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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타이틀] 니콜라스 뢰그의 기이한 알레고리, <배드 타이밍>
이교동 2005-11-11

냉전의 잔영이 깔려 있는 비엔나에서 미국인 심리분석가 린든(아트 가펑클)은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밀레나(테레사 러셀)란 여인과 우연히 알게 된다. 체코인과 결혼했던, 냉전시대에 흔치 않은 이력을 가진 이 여인에게 린든은 육체적으로 급속히 빨려든다. 하지만 육체적 몰입만큼 소유와 집착에 대한 심리적 압박 역시 도를 넘어서게 되고, 결국 연인은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파멸의 순간으로 내몰린다. 영국 출신 감독 니콜라스 뢰그의 1980년 작품 <배드 타이밍>은 데뷔작 <퍼포먼스> 이래 <워크어바웃> <지구로 떨어진 사나이> 등을 통해 독특한 시네아스트의 세계를 구축했던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극한적인 소재 선택과 실험적 영상, 시공을 뛰어넘는 복잡한 내러티브, 그리고 대담한 성의 표현 등으로 발표 당시부터 큰 반향과 이슈를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배드 타이밍>은 정체성과 존재의 대립 그리고 이 사이의 소통의 부재를 즐겨 다뤄왔던 뢰그의 세계가 섹슈얼리티와 결합하면서 젠더와 섹스를 경계로 한 대립과 욕망이 집착을 넘어서 학대와 파괴의 폭주로 내달리는 모습을 영리한 영상으로 풀어낸다. 이는 어두운 인간 욕망에 대한 진지한 탐구인 동시에 소통이 사라진 현대사회에 대한 기이한 알레고리이다.

대담한 표현으로 배급사로부터도 악담을 들었어야 했던 <배드 타이밍>은 삽입된 O.S.T의 저작권 시비에 휘말려 홈비디오도 제대로 출시될 수 없었던, 그야말로 입소문으로만 전해져온 ‘전설’이었다. 하지만 DVD로는 영국과 홍콩에서 어렵사리 출시된 바 있었고, 결국 올 10월에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이 복원된 화질로 제대로 된 판본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복원된 타이틀은 화질이 그리 훌륭하지 않으며 오디오 역시 모노밖에 지원하지 않아 AV적 쾌감을 기대하는 이에겐 매력없는 타이틀이다. 하지만 뢰그의 현란한 편집과 촬영술의 진가를 만끽할 수 있으며, 뢰그의 영화적 에너지가 마지막으로 불태워진 작품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실제로 확인해볼 수 있는 소중한 타이틀이기도 하다. 부록으로 뢰그와 제작자 제레미 토머스가 행한 인터뷰와 주연 여배우 테레사 러셀의 인터뷰 및 삭제장면이 들어 있다. 80년대 초 유치찬란한 ‘성애’ 영화의 선전문구로 소개되었던, 말 그대로 <배드 타이밍>이 “배드 타이밍”의 시대에 상영되었던 사실을 기억하는 시네필들에게 20여년 전 동시상영관의 끈적끈적했던 추억과 동시에 그 시절만큼이나 변해온 우리 사회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감회에 젖어 다시 한번 보기를 강력히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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