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환 <어두운 공간> 캔버스에 아크릴릭 100x180cm 1990
어쩌면 예술가의 삶은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여행과 같을지도 모른다. 끝도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 망망한 우주의 저편을 그리듯, 여행은 이름 모를 일상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을 선사한다. ‘우주를 그리는 화가’로 알려진 오경환(65)의 작품에선 그런 예술가의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한 매력이 전해진다. 대형 캔버스에 검고 짙푸른 우주 공간과 화려한 빛을 발하는 행성들, 운석과 기하학적인 도형의 이채로운 만남 등 그의 붓끝을 통하면 우주의 풍경도 현실이 된다. 작가의 우주에 대한 관심과 탐구는 인간이 달에 첫발을 디딘, 1969년 그의 첫 개인전부터이다. 이미 상상 속의 경이로운 신비감을 잃어버린 우주의 신비는 그렇게 오경환의 화면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오경환의 초기작에서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120여점의 작품들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크게 두 가지에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하나의 호기심적인 대상을 넘어서 인간실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사유적으로 풀어낸 ‘오경환의 우주회화’, 다음은 소박하지만 여행을 통해 만난 일상과 사물을 담은 구상회화들이 그것이다. 특히 일상을 담은 그의 스케치와 드로잉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그의 이면이며 단상이다. 과연 예술가는 여행으로 무엇을 볼까. 일상의 생활 속에서 발견되는 여유로움과 소박함을 담아낸 작품들은 관객을 현대미술에 좀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한다.
작가 오경환은 1940년 도쿄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마르세유 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그동안 동국대 미술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미술원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