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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비범한 모놀로그, 피오나 애플

‘돈만 밝히고 잇속만 차리는’ 음반사 대(對) ‘음악밖에 모르는 순진한’ 뮤지션의 양자대립 구도(또는 여기에 ‘월권을 서슴지 않는 약삭빠른’ 프로듀서를 끼워넣은 삼각구도)는 음악팬들이 열을 내며 입에 올리는 얘깃거리다. 각을 세워 피아(彼我)를 구별하고 도마에 올리는 수모의 대상은 거의 언제나 음반사, 그리고 종종 프로듀서의 몫이다.

이런 ‘고전적’ 갑론을박이 올 초에도 인터넷에서 이슈화된 바 있다. 2003년에 녹음되었으나 미발매 상태이던 피오나 애플의 3집 <Extraordinary Machine>을 둘러싼 논란이 그것이다. 소속사(Epic/Sony)에서 대중성 부족을 이유로 발매를 연기하고 있다는 프로듀서 존 브라이언의 주장이 제기되고, 이에 소속사를 규탄하는 ‘넷심’이 일제히 발원하고, 음반을 발매하라는 이메일을 소속사에 보내는 운동이 벌어지고, 음원이 유출되어 광범하게 ‘공유’되는 현상이 급박하게 벌어졌다. 하지만 발매 지연의 진실은 소속사가 아니라 결과에 만족하지 않은 피오나 애플 자신의 의지에 있다는 정반대의 기사가 나와, 일치단결했던 여론이 일대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겠지만, 어쨌든 소동 덕분에 소속사와 피오나 애플은 음반을 재녹음하기로 결정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음반이다. 원래 버전을 들어보지 못한 이들이라면 음반의 처음과 끝에 실린 <Extraordinary Machine>과 <Waltz(Better Than Fine)>를 들어보면 된다. 존 브라이언의 버전 그대로 실려 있는 까닭이다. 귀기(鬼氣)어린 피오나 애플의 보컬을 마림바 연주가 인상적으로 감싸는 타이틀곡은 톰 웨이츠를 떠올리게 하고, 왈츠 리듬의 피아노로 시작되는 <Waltz(Better Than Fine)>는 오래된 뮤지컬영화의 사운드트랙 같다.

나머지 10곡은 에미넴과의 작업으로 유명한 마이크 엘리존도가 프로듀서를 맡아 새로 녹음한 것이다. <Get Him Back>은 심장처럼 파닥이는 피아노 타건이 불친절한 피오나 애플의 허스키 보컬과 어우러지면서 음반에 스타카토를 남기는 트랙이며, <O’ Sailor>와 <Window>는 닉 케이브(음반 <Murder Ballads>)처럼 그로테스크한 무드가 지배하는 곡들이다. <Tymps(The Sick in the Head Song)>는 넬리 매케이와는 닮은 듯 다르게 힙합적 요소를 삽입한 곡이다.

이 음반은 비공식 버전에 비해 절충적이고 접근하기 쉬워졌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하드코어 팬이라면 날것의 느낌이 줄었다는 아쉬움을 표할 수도 있다. 설사 그렇더라도 이 음반이 뛰어난 얼터너티브 싱어송라이터의 색다르고 기괴하며 비범한(extraordinary) 모놀로그라는 걸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