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레드 제플린의 <The Song Remains the Same> DVD를 샀다. 오래전 LP로 들은 적은 있지만,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로버트 플랜트, 지미 페이지, 존 폴 존스 그리고 존 보냄.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노래와 연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것이 좋았다. 존 보냄의 죽음으로,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듣는 것은 정말 황홀했다. 록음악은, 그 시절이 최고였다.
누군가가 그랬다. 모든 것에는 절정기가 있는 법이라고. 굳이 모든 것, 이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자주 그런 생각이 든다. 50, 60년대의 재즈라든가, 70년대의 록음악을 듣다보면 문득 그런 느낌이 온다. 카메론 크로의 <올모스트 훼이모스>는 찬란했던 록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풍경을 멋지게 펼쳐놓는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결국은 모든 것이 시들어가거나 죽어간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게 모든 생명의 법칙 아닐까? 그리고 다른 모습으로 재생하거나, 유전자를 물려주거나 하는 것.
혹은, 그저 단순하게 나이가 든 탓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왕성하게 받아들이던 젊은 시절과는 달리, 중년 정도가 되면 자신이 편한 것만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알고 있는 것, 이미 좋아하고 있는 것들만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러면서 지나간 것들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높은 가치를 매기고 있는 것일지도.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가끔은 그것을 시험해본다. 케이블의 음악방송을 틀어놓고 그냥 보고 듣는다.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찾아본다. 새로운 노래들도 좋은 것은 많다. 가슴을 울리는 노래들은 여전히 많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절대적으로 빈약한 시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욕했던 80년대의 ‘반짝거리는’ 팝음악이 재평가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아마도 세월 탓일 거다. 절대적으로 무엇인가를 배척하지는 않지만 취향은 견고해진다. 좋아하던 풍은 여전히 좋아하고, 싫어하던 것은 더욱더 싫어진다. 싫어하던 것들이, 서서히 좋아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싫었던 것의 좋은 이유를 찾아내 받아들이기에는 이미 굳어버렸고 시간도 별로 없다. 그걸 받아들이려면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무조건적인 투항도 필요하다. 그러나 나이가 드니 그럴 여유가 좀처럼 없다.
가끔은 아쉬울 때가 있다. 웃기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예전에 음악을 들을 때는 굳이 찾아서 들었다. 록음악을 들으면 당연히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의 계보를 따라 듣고, 3대 기타리스트를 섭렵해야 하는 줄 알았다. <월간팝송>의 명반 리스트를 찾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스쿨 오브 락>의 아이들처럼, 동시대의 음악 말고는 큰 관심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딱히 그 시절이 더 좋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시야가 고정된 것보다는 분방한 것이 낫지 않을까. 과거를 옹호하진 않지만, 과거란 지금을 만드는 뼈대가 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긴 문제는 듣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한 과거를 알려주는 사람과 매체가 적은 세태일지도 모르겠다. <스쿨 오브 락>이 아니었다면, <배철수의 음악캠프> 말고 누가 <Immigrant Song>을 들려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