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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군 투덜양] 진짜 연기자란 이런 거지, <빙 줄리아>

투덜양, 줄리아의 일관되고 훌륭한 연기력에 감탄하다

배우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 ‘연기를 한다’는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일상생활에서 이 말은 ‘내숭을 떤다’, ‘위선적이다’로 바꿔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오래전 이미 <씨네21>을 통해 ‘할리우드 같은 년’임을 커밍아웃했던 바, 나를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이 훌륭한 연기자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아 왔다. 훌륭한 연기자란 무엇인가. 무대나 스크린 위에서와 다르지 않다. 연기에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선배 앞에서는 근면, 성실, 겸손함을 연기했던 인간이 후배들 앞에서 무례하고 포악한 내면을 드러낸다든가, 가진 자 앞에서 하해와 같던 성품을 자랑하던 사람이 그렇지 못한 이에게 추상같이 냉혹해지는 ‘허점’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표리부동하다는 것은 연기력 미숙의 다른 표현이고 성숙한 인격이란 뛰어난 연기력과 다르지 않다. 공자가 태어났을 때부터 공자였겠는가. 어린 시절부터 갈고닦은 연기의 무대를 바깥세상뿐 아니라 자신의 내면으로 옮겨서까지 그 일관된 연기력을 발휘할 때 그것이야말로 인격적 성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빙 줄리아>는 이런 나의 ‘연기’이론을 뒷받침해주는 영화였다. 줄리아는 연기자다.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이기도 하고, 아들에게 “실제 존재하지 않는 사람 같다”고 핀잔을 받을 정도로 일상생활에서도 뛰어난 연기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의 연기생활이 위기를 맞게 된다. 젊은 애인과 남편의 배신이다. 또 하필이면 줄리아의 뒷통수를 연타로 가격한 쌍방의 연적은 젊은 한 여성이다. 눈이 뒤집히게 된 상황에서 처참해진 줄리아의 에고가 잠시 꿈틀거리지만 줄리아는 더 독하게 연기를 한다. 줄리아가 훌륭한 배우, 그리고 인간일 수 있는 건 남들이 무너지는 국면에서 연기적 상황을 그대로 이어간다는 점에 있다.

이런 상황에 연기력 ‘보통’인 ‘보통’ 사람 같으면 울고불며 젊은 애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을 것이며 온갖 집기를 내던지면서 남편에게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라는 70년대 멜로영화적인 대사를 날리고야 말았을 것이다. 결과는 뻔하다. 줄리아는 더 많아지고 깊어진 주름을 거울에서 확인하며 기나긴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끝났을 거다. 80년대 여성영화 버전이라면 여기에 ‘남자가 대수야? 그래, 내 인생을 사는 거야’라는 대사를 추가했겠지. 그러나 줄리아는 우아한 연기로 두 남자에게 멋진 반격을 한다. 단 하나의 주름도 더 만들지 않고, 줄리아는 더욱 화사해진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이 모든 연기를 ‘복수의 전략’이 아닌 ‘삶의 전략’으로 삼는 깊이있는 연기력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근사하게 늙는다는 건 줄리아처럼 나이먹는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연기적 일관성을 잃지 않는 것. 그 일관성을 내면화하는 것. ‘억울하다’는 촌스러운 신세한탄에서 벗어나는 것.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제부터 ‘빙 줄리아’를 가훈삼아 훌륭한 연기자로 거듭나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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