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작가나 PD 지망생들 중 MBC <베스트극장>에 한편이라도 참여할 수 있는 경우는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들 중 미니시리즈에 입성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되고, 거기서 끝까지 살아남아 ‘선생님’ 소리까지 듣는 사람들은 몇명일까. 그들이 <베스트극장>에 참여했다는 건, 이제 겨우 시작이란 뜻이다. 그래서 <베스트극장>의 첫 4부작 미니시리즈 <태릉선수촌>은 <베스트극장>의 현재 위치와 겹쳐 보인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태릉에 들어온 것 자체가 기적인데, 그곳에선 국가대표가 발에 채인다. 목에 힘 좀 주려면 메달을 따야 하고, 주목받는 방법은 올림픽 금메달뿐이다. 하지만 수아 같은 올림픽 2관왕마저도 치고 올라오는 ‘천재’ 후배를 보며 자신이 천재가 아님을 슬퍼한다. 모든 것은 메달이 말해주고, 결과가 곧 과정이다.
<태릉선수촌>은 그동안 노력, 과정, 페어플레이 같은 단어 속에서 우리가 외면했던 운동선수들의 현실, 그리고 경쟁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하지만 이건 역설적이다. <베스트극장>이 남녀의 불륜 대신 3년 동안 2진에 머문 유도선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 있는 건, <베스트극장>이 경쟁에서 한발 물러서 있기 때문이다. 재활 선수를 위한 훈련 프로그램처럼, <베스트극장>은 당장의 성적 대신 이 ‘선수들’에게 자신의 기량을 시험해보도록 한다. 그래서 <태릉선수촌>에는 16:9의 화면비를 이용해 화면의 끝과 끝을 오가는 롱테이크가 여러 차례 등장하고, 조금 유연한 거 믿고 덤비는 ‘평범한 인간들’을 무시하는 ‘진짜 천재’ 체조선수 마루 같은 캐릭터가 이야기의 중심에 선다. 그러나, <태릉선수촌>은 지나친 실험성이 <베스트극장>을 아예 경쟁에서 밀어냈다는 것도 잊지 않은 듯하다. <반올림>의 작가의 대본답게 <태릉선수촌>은 캐릭터의 진지한 고민에 적절하고 분명한 ‘해답’을 제시한다. 수아처럼 정상에서 떨어진 사람은 한번 처절하게 울어봐야 하고, 민기는 공포를 극복함으로써 선발전의 징크스를 이겨낸다. 그 과정 속에서 그들은 점차 성장하고, 서로 성장을 돕는 동안 차분한 설렘이 시작된다. 작품 속 현실은 냉정하지만, 그것을 전개하는 방식은 차분하고 따뜻하다. 또한 기존의 <베스트극장>과 달리 회당 30분 분량의 에피소드에 두개의 짧은 이야기를 병행하는 방식은 시청자들이 쉽게 작품에 다가설 수 있게 한다.
<태릉선수촌>은 일상의 담담함과 실험성 같은 <베스트극장> 고유의 장점들을 어떻게 좀더 경쟁력 있는 모습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보여준다. 물론, <베스트극장>은 여전히 시청률 경쟁의 약자다. 하지만 운동선수들과 달리 드라마는 반드시 1등만 할 필요는 없다. 토요일 밤 11시40분. 더 물러날 데는 없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다. 사라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게 <베스트극장>이 따야 할 메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