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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재발견 ‘까르르 재회’, <해피 투게더 프렌즈>

스타의 초등학교 시절 친구찾기 프로그램인 <해피 투게더 프렌즈> 촬영현장

‘해피투게더 프렌즈’ 사람찾기 공식을 바꾸다 눈물의 상봉이 아니라 악수 청하며 유쾌하게 웃는다 “친구야 반갑다” 스타는 추억의 대상이 되고 시청자들은 꾸러기 친구를 그린다

‘사람 찾기’ 프로그램도 시대를 탄다. 지난 5월 방송을 시작한 신세대형 사람찾기 프로그램 <해피 투게더 프렌즈>가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방영 초기 15%이던 시청률이 20%를 넘었고, ‘아이러브스쿨’의 쇠퇴와 더불어 주춤했던 동창찾기 붐도 이 프로그램 방영 뒤 다시 일고 있다.

<…프렌즈>는 여러 면에서 새롭다. 우선 오랜만에 만난 이들의 기억의 상이함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출연한 스타가 스스로를 기억하는 것과, 친구가 자기를 기억하는 내용이 다를 때 웃음이 터져나온다. 모두의 기억에 만족하게 과거를 기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움을, 유머의 소재로 빌어온 이 프로그램의 발상은 포스트모던하기까지 하다. 당연히 ‘눈물어린 상봉’은 없다. 특별히 그리울 일 없이, 비슷한 일상이 이어져온 초등학교 동창들의 만남을 어떤 감동적 연출도 없이 하나의 게임으로 만든다. 솔직함, 쿨함은 이제 일상의 인간 관계 뿐 아니라 10여년만에 만나는 친구 사이에도 적용되는 시대다.

스타, 기억의 주체가 아니라 기억의 대상=지난 4일 낮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별관 스튜디오에서는 개그맨 서경석과 가수 서지영이 초등학교 동창들을 찾고 있었다. 10일 밤 11시5분에 방송될 <…프렌즈> 방송분 촬영현장이었다.

스타와 친구가 서로를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첫번째 코너인 ‘뻐꾸기는 알고 있다!’가 시작되자, 자신만만했던 서지영이 당황하는 기색을 내비친다. 스튜디오에 나온 친구 5명 모두가 ‘내 친구(서지영)는 작업의 명수였다?!’는 질문에 ‘그렇다’는 버튼을 누른 것이다. 버튼 수에 맞춰 일명 ‘공포의 5뻐꾹’이 울렸고, 서지영은 “굉장히 이해할 수 없고…왜 눌렀니 니네(너희)들?” 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어 친구들이 “지영이는 남자 앞에서 하는 행동과 여자애들 앞에서 하는 행동이 180도 달랐다”거나 “지영이가 사귀자고 해서 만나다가 고민 끝에 헤어지자고 했더니 ‘그러든지’ 하고 마는 바람에 선수구나 싶었다”는 ‘증언’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서지영은 “내가 언제∼!”, “내가?” 하며 지극히 인간적인, 그래서 유쾌한 ‘기억의 불완전성’ 혹은 ‘표현의 부정직성’을 드러냈다.

다른 사람찾기 프로그램들의 방식을 따랐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어린 시절 순진하고 내성적이었고, 남자들 앞에서 다르게 행동한 것은 수줍었기 때문이며, 남자친구한테 먼저 사귀자고 한 적은 없었다”는 그의 말에 따라 추억이 재구성되고, 대역 배우에 의한 재연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스타 본인의 기억에 의해 연출된, 미화될 소지가 큰 과거인 것이다. 하지만 <…프렌즈>는 친구를 찾으러 나온 스타의 위치를 ‘기억의 주체’에서 ‘기억의 대상’으로 뒤바꾼다. 과거를 회상하고 증언하는 역할은 스타가 아닌 그 친구들에게 맡겨지고, 사실에 좀 더 바짝 다가간 스타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가감없이 소개된다.

스타로서는 적잖이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친구들의 회고가 스타에 대한 대중의 호감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기 쉽다. 지난 9월29일 방송에서 친구들을 찾았던 노현정 아나운서의 경우, 계속되는 친구들의 ‘돌발 증언’ 앞에 “저 정말 이상한 애였네요”라고 자백(?)을 해야 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간 ‘웃지 않는 얼음공주’로 알려졌던 그에 대해 더 큰 친밀감을 보이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고, 방송 직후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서 그의 이름이 1위로 등극하기도 했다.

눈물의 상봉 대신 ‘진짜’를 찾는 게임=두번째 코너인 ‘숨은 친구 찾기 1라운드’. 서경석이 커튼 밖으로 나와 25명의 가짜 친구들 틈에 숨어있는 진짜 친구 5명을 찾기 시작했다. 의미심장하게 “친구야!”를 외치는 서경석. 하지만 가짜 친구가 “처음뵙겠습니다”라며 정체를 드러냈다. 서경석은 5번의 기회 가운데, 진짜 친구의 인사인 “반갑다, 친구야!”를 2번밖에 듣지 못하고 1라운드를 마쳤다. 그는 2라운드에서 나머지 진짜 친구를 모두 찾아냈지만, 마지막까지 친구를 다 찾지 못하는 스타들도 상당수다.

일반적인 사람 찾기 프로그램의 경우 진행자들의 ‘고정’ 멘트가 있다. “△△가 과연 나왔을까요, 이름을 불러주세요~!”다. 그리고 애잔한 음악과 함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옛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와 달리 <…프렌즈>는 상봉의 감동을 연출하려 하지 않는다. 스타가 커튼 밖으로 나와 사람들 사이에서 진짜 친구를 찾아내야 한다. 못 찾기도 한다. 친구라는 게 잊혀질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시덕거림과 약간의 긴장을 주는 ‘사람찾기 게임’이 가능해진다.

신여진 작가는 “친구를 찾는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사람찾기 프로그램과, 스타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에서는 다른 토크쇼 프로그램들과 소재가 비슷하다. 하지만 ‘형식’의 변화를 꾀함으로써 신선한 웃음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출연자나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얻었다는 것은 ‘신선한 기획의 성공’ 이상의 의미를 반영한다.

시청률이 78%에 이르렀던 1983년 한국방송의 이산가족 찾기 <누가 이 사람을 아시나요>에서 만남은 곧 눈물이었다. 이별했던 이들의 사연은 질곡의 세월을 함께 지낸 시청자들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현 <신(新) TV는 사랑을 싣고>)로 대표되는 <누가 이사람을…> 이후의 ‘사람찾기’ 프로그램들도 시청자들과 눈물의 정서를 공유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해방이 되고 전쟁이 끝났어도 여전히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그 세월의 한 자락을 함께 나누다 헤어진 추억 속의 인연을 찾는다는 것은, 웃음이 터지기에 앞서 눈물이 쏟아지는 경험이었다.

<…프렌즈>에 열광하는 20대 중반~30대 중반 세대는 가난보다 풍요의 기억이 많은 시대, 너절해도 끈끈한 유대관계보다 구김없고 깔끔한 인간 관계가 자리를 잡아가던 시대를 살아왔다. 그들에게 만남은 그리운 대상과의 해후가 아니라 하나의 이벤트에 가까울지 모른다. <…프렌즈>의 성공을 ‘좀더 개별적이고 솔직한 세대의 만남’, 그 변화를 짚어낸 기획의 성공으로 읽게 만드는 대목이다.

사진 한국방송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