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밤이 허전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국내외 실력파 뮤지션들의 명연주도, 썰렁한 농담과 어눌한 진행으로 밤잠을 깨우던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과 가수 이현우의 모습도 이제 볼 수 없었다. 프로그램 폐지 소식은 들었지만, 정작 수요일 밤이 되니 그 아쉬움이 절절히 사무쳤다. 깊은 밤 흔치 않게 텔레비전이 휴식 같은 친구가 돼줬던 시간. 문화방송 <수요예술무대>를 이젠 볼 수 없다니.
<김동률의 포유>는 허전함을 메꾸지 못했다. 이름부터 <윤도현의 러브레터>(한국방송) <김윤아의 뮤직웨이브>(에스비에스)가 떠오른다. 뚜렷한 차별성 없이 베끼기나 따라가기라는 의심이 불거지니 불만이 터져나올밖에. 내용도 그랬고, 분위기도 그랬다. 다를 게 없었다. 내세울 것 없는 후속 프로그램이, 탄탄하게 자리잡은 경쟁 프로그램을 따라잡기란 쉬운 일이 아닐 터다.
다시 의문이 든다. 왜? 더 나을 게 하나도 없는, 오히려 경쟁력을 갖기 조차 어려울 ‘똑같은’ 프로그램을 ‘하나 더’ 만든 걸까? 그것도 문화방송의 대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13살짜리 프로그램을 내쫓고 말이다.
누구는 저조한 시청률 탓이라고도 하고, 또 누구는 프로그램 소속 부서가 편성국에서 예능국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심야 프로그램 시청률이 1~5%면 괜찮은 것 아닌가. 부서 변경이 13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고품격 음악프로그램을 폐지한 이유라면 더욱 황당하다. 뭔가 설득력있는 설명이 빠진 듯 허전한, 문화방송의 이번 가을개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수요예술무대>다.
다른 개편·신설 프로그램들도 그렇다. 몰래카메라를 부활시키고 정치인들을 출연시키면서 논쟁을 부르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 정통 코미디 부활을 내세웠지만 웃기기보다는 민망함과 안쓰러움이 앞서는 <웃는 데이> 등도, ‘왜?’라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과거 <경찰청 사람들>의 새 버전인 <형사>나 중년 연예인들이 추억을 되새기는 <스타스페셜 생각난다> 등을 보면, 가을 개편의 화두는 복고란 말인가? 그렇다면 더욱 13년을 이어온 프로그램을 쉽게 폐지해버리는 건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다.
이러저러한 여러 사건·사고들과 전반적인 시청률 하락으로 문화방송은 위기를 맞고 있다. 대대적인 가을개편으로 분위기 쇄신을 꾀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었을 터다. 그래서 지난 8월부터 여러차례 고심어린 회의와 조정을 거쳤다. 그러나 알맹이가 빠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맹이란 가을개편의 중심을 꿰뚫는 철학이며, 이는 늘 문화방송의 자랑스런 표상이었던 ‘실험정신을 바탕으로한 창의성’이어야 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등이 크게 성공하며 문화방송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었던 것 또한 다른 방송이 ‘가보지 않은 길’을 과감히 골랐기 때문이 아닌가.
허전한 수요일 밤, 아쉬우나마 토요일 밤을 기다리며 위안을 삼는다. 가을개편에서 돌아온 <베스트극장> ‘태릉선수촌’이 그나마 문화방송의 ‘명성’을 이어가는 씨앗이라 여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