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불안한 영혼의 바리케이드
최보은 2005-11-04

지난 15일 저녁 KBS-1TV가 방송한 ‘KBS스페셜-고위 공직자, 그들의 재산을 검증한다’는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킨 프로그램이었다. 박희태 국회부의장, 이해찬 국무총리 등 고위공직자들의 불법 변칙 재산증식 과정을 추적한 이 프로그램이 내게 던진 가장 큰 의문은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객관적으로 충분한 것 이상의 재산축적과 증식의 필요를 느끼는가?’였다.

최고의 학벌과 현기증 나는 사회적 지위, 이왕에 갖고 있던, 먹고 살기에 충분한 재산이 이들에게 가져다 주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

특감 기간 도중 국회의원들과 피감기관인 검찰 관계자들이 ‘광란의 밤’을 연출한 사건을 보면서도, 이같은 본원적 의문을 느꼈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적과의 동침’을 해야만 하는가? 서로 생각이 다르다면, 왜 헤어지지 못하는가? 왜 술폭탄의 힘을 빌려 뇌세포를 초토화시키면서까지 서로 알아두고 친해두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같은 의문에 대해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추론을 해본다.

재산과 인맥은 일종의 존재의 보험이다. 보험은, 앞날의 위험을 예상하고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의지하는 방패막이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들은 불안한 영혼일 터이다. 남들 보기에 더 부러울 것이 없을 듯한 이들이, 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이들의 존재 이유가 ‘남들’에 기대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의 칭찬, 남들의 존경, 남들의 부러움, 남들의 평가.

그것에 기대어 살다보니, 장식품에 불과해야 할 학벌, 지위, 재산이 이들의 삶 어느 시점에선가부터 존재의 본질을 대체해버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없는 삶이란, 이들에겐 사회적 죽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들은 신분상승 사다리를 멀미나게 타고 오르면서 ‘그 어느 장식품도 존재의 완벽한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진실을 무수히 목격해왔을 것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전직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전국민의 농담거리가 되고, 타고난 귀족인 전직 언론사 사장이며 주미대사가 순식간에 파렴치범이 되는 예들을 보면서, 불안감이 깊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원래부터 주체적인 질문을 가져보지 못했던 이들은 너무도 명백한 진실을 통해 진정한 삶의 원리를 발견하는 대신, 아마도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잘못된 답을 얻었을 것이다. 즉 ‘내가 가진 것들이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 스스로 족하지 못하다면 그 삶이 과연 제대로 된 기초를 가진 삶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기보다, ‘내가 가진 게 아직도 부족한 것이 아닐까?’라는 물음 앞에 불안감이 깊어진 나머지 ‘더 확실한 보험을 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며 존재에 더 두꺼운 바리케이드를 치는 쪽으로 말이다. ‘가진 것’의 덧없음을 깨달을 능력이 없는 이들은, 안타깝게도 ‘더 가져야 한다’는 멍청한 결론을 서둘러 내리고, 자신이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뿌듯함마저 느꼈을 것이다.

적과의 동침을 왜 하는가? 내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내가 앞으로 어느 당 소속이 될지 모른다,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 저 사람의 힘을 빌려야 될지 모른다라는, 존재의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불안감이 아니라면, 이념이 다르고(있기나 하다면!) 소속이 다르고 역할이 다른 힘센 사람들이 굳이 억지 네트워킹을 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신을 믿지 못하는 나약한 영혼들의 가엽고 누추한 연대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자신에 대한 성찰로 돌아온다.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사회를 인정하고 그것을 존재 조건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지성은 사라지고 영혼은 그 어떤 바리케이드도 막아줄 수 없는 불안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러니 생각의 손짓이 일으키는 잔바람에도 우주 끝까지 날려갈 수 있도록 가벼워지자고, 완벽하게 독립된 존재가 됨으로써 장식품의 필요를 최소화하자고 다짐한다. 재산도 인간관계도 축적하지 않는, 미니멀한 삶을 살아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