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직장인처럼 나도 종종 사표를 꿈꾼다. 직장생활을 너무 일찍 시작해서 서른도 채 되기 전에 6년차가 되었는데, 1년에 (최소) 50일씩 밤을 새우다보니 시쳇말로 ‘몸은 점점 커지고(?) 얼굴은 썩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던지는 대신 열심을 다하(려)는 이유는, “회사님은 돈을 주시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하면 천성이 게으른 나 같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 구실을 하려면 돈의 압박이 필요하다. 나는, 통장 잔고가 따뜻하고, 집안 사정이 아름답다면 당장이라도 집에서 놀고 먹는 편이 낫다는 인생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이 재미있을 때도 많지만, 돈이 있으면 일을 절대 거들떠보지 않는 스스로의 성격을 너무도 잘 아는 나는, 적금이나 저금에 취미를 붙이지 않는다. 이게 내가 직장생활을 6년이나 하면서 성냥팔이 소녀처럼 슬픈 얼굴로 매일의 밥값을 고민하는 이유다.
그럼 월급은 다 어디에 쓰냐고? 그게 문제다. 귀신이 들렸다, 는 식의 의미로 나는 ‘지름신이 들렸다’. 앞서 말한 바대로 몸은 커지고 얼굴은 썩었으므로 패션과 뷰티에는 큰 뜻이 없지만, 책과 음악, 영화에 대한 소비욕에는 면역이 되지 않는다. 책과 음악, 영화라고 하면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실상은 상당히 후줄근하다. 잠을 자다가 팔 한번 뻗었을 뿐인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침대 옆에 쌓아둔 책 더미가 무너져 방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던가, 모처럼 수입된 포크락 시디를 사모으다가 교통카드 충전할 돈도 남지 않았다던가(월급날까지는 아직 20일이나 남았는데!) 하는 일은 우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지름신이 오실 때마다 맨발로 달려나가 영접한다. 어쩌면 조만간 무능함을 이유로 회사에서 짤릴 수도 있으니까, 그때는 사놓은 책을 읽고 사놓은 DVD를 보고 사 놓은 시디를 들을 거라는 게 쇼핑벽의 이유다. 문제는 이런 삶이 비호감이라는 데 있다. 부모님은, 집에 찾아온 손님이 책과 시디가 문자 그대로 ‘쌓여’ 있는 내 방 문을 열어볼까 노심초사하시고, 나는 이것저것 사모으다 보니 늘 가난해진다. 휴가 때 마음먹고 외국을 나갔을 때도 이런 버릇을 가지고 떠나서, 밥 대신 과자를 우걱거리며 허기를 달래는 한이 있어도 나는 기어이 책 한 무더기를, 시디 몇장을 손에 넣고야 만다. 눌러담을 수도 없는 책들로 가방이 터져나갈 지경이 되면, 다른 물건들을 버리기 시작한다. 가이드북도 버리고, 다 써가는 샴푸도 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책을 넣는다.
친구와 함께 떠난 올 여름 일본 여행길에서도 나는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서른 즈음의 여자 둘이 수다를 떨며 새벽 5시까지 맥주를 연거푸 들이키고 600페이지짜리 책을 독파하고, 다음 날 아침 12시가 넘어서 눈을 뜬 것까지는 좋았다. 오후 3시가 넘어 도착한 교토 시내에 폭우가 퍼붓는데 둘 다에게 우산이 없었다. 오사카 시내로 들어온 우리는 시간을 때우겠다는 단순한 이유로 쇼핑몰에 들어섰는데, 이럴 수가! 그곳에 버진 메가스토어가 입점해 있는 게 아닌가. 국내에서 볼 수 없던 재즈와 일렉트로니카 음반들이 빼곡한 진열장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가브리엘 천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