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대학가요제에서 멈췄다. 아, 아직도 대학가요제를 하고 있구나, 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뭔가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정말 오랜만에 대학가요제를 봤다. 꽤 재미있었다. 참가자들의 새로운 노래와 기성 가수들의 무대까지 연이어 보다가 윤도현이 심사위원장 배철수를 불러 함께 <탈춤>을 부르는 장면에서는, 아득한 추억까지 밀려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해 대학가요제의 노래들은 꽤 좋았다. 대학가요제에서 듣는 노래가 좋았다는 것은, 정말 오래된 기억이었다.
한동안 대학가요제를 보지 않았다. 아니 대학가요제란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꼭 나이가 들어서만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대학가요제는 진부해졌다. 행사 자체가 아니라, 대학가요제에서 나오는 노래가 기성 가요와 별다른 차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기성 가요를 흉내낸, 기성 가요를 의식하고 만든 것 같은 노래들을 대학가요제에서 듣고 싶지는 않았다. 요즘 대학생들의 지상목표가 취직인 것처럼, 대학가요제의 목표도 가요계의 진입이기 때문일까? 대학가요제의 위상이 떨어진 것은, 대학 자체의 사회적 가치가 떨어진 탓도 좀 있는 것 같다는 허튼 생각마저 들었다.
과거의 대학가요제(강변가요제까지 포함해서)는 새로운 노래의 산실이었다. 의도가 어쨌건, 행사장이 어디였든 대학가요제의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대학가요제에서 나온 노래들은, 기성 가요와는 분명하게 달랐다. 그룹사운드와 포크 그리고 중창이 주류였던 70, 80년대 대학가요제의 노래들은 가슴을 울릴 만한 이유와 감성이 있는 노래들이었다. 민중가요와는 다른, 그 시절만의 절실함으로 가득 찬 대학가요들. <나 어떡해> <꿈의 대화> <내가> <스물 한살의 비망록> 등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대학가요제는 의미가 있었다. 활주로, 블랙 테트라, 샌드 페블즈, 로커스트, 에밀레, 썰물, 뚜라미, 징검다리, 이상우, 이정희, 우순실….
개인적으로는 어우러기, 바다새, 도시의 그림자, 작품 하나, 마음과 마음 같은 여성 보컬의 노래들을 좋아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문득문득 그리워졌다. ‘그 많던 여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란 말처럼, 대학가요제의 그 여성 뮤지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직 기교가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약간은 수줍게 그러나 당당하게 내지르던 그녀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올해 대학가요제에서 다시 그런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대상을 받은 EX의 <잘 부탁드립니다>는 정말 대학가요제에서 듣고 싶었던, 딱 그런 노래였다. 그 시절의, 그들의 마음이 진정으로 담겨 있는.
요즘의 대학가요제는 이미 힙합과 모던 록으로 주류가 바뀌었지만, 대학에 요구하는 그런 패기와 열정이 돋보이는 축제였다.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기성 가요의 세련됨이나 기교가 아니라, 자유로운 발상과 순수한 도전이다. 이번 대학가요제에는 언젠가부터 희미해졌던, 바로 그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