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화·황기순 등 노장들 귀환…젊은층 위주 형식에서 탈피 비보연기 등 정통 코미디 도전 ‘식상하다’ 는 평도 맣아
왼쪽부터 폭소클럽의 ‘최양락의 올드보이’ 웃찻사의 ‘퀴즈야 놀자’, 웃는데이의 ‘라이브 요리쇼 간단합니다’ 한국방송·에스비에스·문화방송 제공
지상파 방송3사의 코미디 전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질 전망이다. 지난해말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와 에스비에스 <웃찾사>의 뜨거운 접전으로 코미디의 새 부흥기를 맞았으나, 힘겹게 핀 꽃이 지는 모양새였다. 겉으로 드러난 바, 올 상반기 노예계약 파문과 폭력 사건이 주된 영향을 끼쳤다. 안으로는, 주로 젊은 세대를 끌어당겼던 휘발성 짙고 속도 빠른 ‘스탠딩 개그’의 한계 탓이기도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시도가 펼쳐진다. 타깃을 젊은 세대 위주에서 텔레비전 주 시청층인 중장년층으로 넓히고, 이를 위해 과거 코미디 주역들을 끌어들였다. 장르도 스탠딩 개그 일색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복고로 중장년층 잡기=문화방송이 복고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 봄 시도한 공개 스탠딩 개그 <코미디쇼 웃으면 복이 와요>가 편성 시간의 불리함과 후발주자로서의 악조건을 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새 코미디 프로그램은 <웃는 데이(day)>. ‘퀴즈탐험 동물의 세계’ ‘라이브 요리쇼 간단합니다’ 등 주요 꼭지들은 공개홀이 아닌 비공개 녹화장에서 만들어진다. 프로그램의 숨통으로 신인 개그맨들이 꾸미는 공개 코미디 형식의 ‘11통 5반’도 마련했다. 방송시간도 본격 경쟁을 위해 수요일 밤 11시대로 바꿨다.
스탠딩 개그 붐을 일으킨 한국방송 <폭소클럽>도 본격 7080 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 <개그콘서트>와 차별화하면서 동시에 중장년층 중심으로 일고 있는 복고 코미디에 대한 시청자들의 욕구를 반영하기 위해서다.
에스비에스 <웃찾사>도 이번 가을 개편에서 다시 재기를 위한 터를 잡은 뒤 이르면 올해 안으로 젊은 세대 위주의 획일화를 탈피해 다양한 꼭지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코미디 주역들의 귀환=복고로의 회귀는 과거 코미디언들의 귀환으로 이어졌다. <웃는 데이>는 이경규·김국진 등을 코미디 무대에 올렸다. 조혜련·이윤석·정형돈도 여기에 가세했다. 개그맨으로 시작해 주로 엠시로 활동하던 이들이 다시 개그로 돌아온 셈이다. 이들은 주로 80~90년대식 바보 연기에 도전해 정통 코미디 연기를 선보이겠다는 각오다.
<폭소클럽>도 김보화·황기순·이경래·배영만 등 과거 내로라하는 인기 코미디언들이 나온 데 이어, 고영수·김정렬·김상호·오재미 등도 출연을 앞두고 있다. 열쇳말은 신구의 조화. ‘최양락의 올드 보이’에서 후배 개그맨들과 함께 공개 코미디로 대결을 펼친다. 기존 <개그콘서트>의 인기 꼭지를 재연하는 방식이다.
근래에 휴식기에 들어갔던 컬투 정찬우·김태균도 ‘그때 그때 달라요 2’ 등을 들고 <웃찾사>로 돌아온다. 노예계약 파문 등에 이어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던 윤택·김형인 등도 새로 손질한 꼭지로 <웃찾사> 출연을 재개하고, 폭력 사건으로 쉬었던 김진철은 <폭소클럽> ‘피아노맨’으로 전격 복귀한다.
르네상스 다시 오려나=복고와 복귀에 대한 평가가 아직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웃는 데이>의 경우, “유치하고 식상하다”는 악평이 대세다. <폭소클럽>의 과거 코미디언 출연 꼭지도 “어색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최근의 스탠딩 개그에 익숙한 시청자들의 기호가 고정된 탓도 있겠지만, 단순한 과거의 재연에 그쳐 호응이 낮다는 평가가 더 적절해 보인다. 코미디의 복고가 큰 흐름이라 하더라도, 재창조의 과정이 필수적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코미디 르네상스를 제대로 맞으려면 새로운 시대 변화에 발맞춰 코미디계의 전근대적 관행이 청산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다양한 장르가 선보여야 한다. 이와 함께 새로운 인재를 받아들여 아이디어를 재충전할 기회를 부여하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여기에 코미디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의 성숙함이 보태진다면 르네상스의 윤활유 구실을 할 것이다.
눈길가는 꼭지들
세대간 조화 노린 ‘최양락의 올드 보이’ 한글파괴 빗댄 ‘그때 그때 달라요 2’ 손범수도 출연하는 ‘퀴즈 탐험 동물의 세계’
요즘 코미디 프로그램은 꼭지들이 수시로 들고 나는 특징이 있다. 이는 내부 경쟁으로 이어져 콘텐츠 질의 향상이라는 긍정적 구실을 한다. 가을개편을 맞아 지상파 3사 코미디 프로그램의 꼭지들도 새로 선보이고 있다. 볼만한 꼭지들은 주로 세대간의 조화가 특징이다.
한국방송 <폭소클럽>은 ‘최양락의 올드 보이’를 새로 마련했다. 옛 코미디언들의 통로 구실을 하는 중요한 꼭지다. 이들은 요즘 개그맨들과 팀을 꾸려 요즘 유행하는 인기 개그를 재연해 대결을 벌인다. 재연에 머물지 않고 과거 자신들의 유행어를 변형해 구사하기도 한다. 지난 방송에선 “노개그맨은 죽지 않는다. 다만 캐스팅 되지 않을 뿐이다”라는 말로 요즘 개그계를 패러디하기도 했다.
에스비에스 <웃찾사>의 전성기를 일군 주역 컬투는 6개월여만에 ‘그때 그때 달라요 2’를 들고 나왔다. ‘그때 그때 달라요 1’에서 지나친 영어 열풍을 가볍게 꼬집었다면, 이번엔 한글 파괴 현상에 대한 패러디로 발전했다. 읽는 대로 써서 보내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엉뚱하게 해석해 배꼽을 잡게 한다. 이른바 ‘인터넷 언어’ 등을 고쳐서 바르게 쓰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언어적 표현도 지난 번보다 더욱 과감해진 느낌이다.
문화방송 <웃는 데이(day)>는 ‘퀴즈 탐험 동물의 세계’를 내놓았다. 20여년 간 큰 인기를 끌었던 한국방송의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를 비튼 형태다. 손범수 아나운서가 진행자로 나와 의도를 명확히 했다. 이경규·김국진·이윤석 등이 패널로 나와 퀴즈를 푼다. 김경식·조혜련 등은 직접 동물 연기에 나섰다. 퀴즈쇼의 형식을 빌어온 독특한 구성에 아직은 시청자들이 낯설어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템 개발을 통해 시청자들과 친숙해질 수 있느냐가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