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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들이, 돌아왔다!
이다혜 2005-10-28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Earth Wind & Fire, EWF)가 고루하다고? 앤지 스톤? LL 쿨 J? 스눕 도기 독? 걔들 모두 EWF의 영향을 받았단 말이다!” 영화 <드럼라인>에 나오는 이 대사는 ‘Earth Wind & Fire’(‘땅, 바람 그리고 불’이라는 밴드의 이름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는 ‘지풍화’(地風火)로 통하는)가 미국 음악에 끼친 영향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한마디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의 23번째 앨범인 <llumination>이 발매되었다. 오빠들이, 돌아왔다!

EWF의 이름은 모를 수 있지만 그들의 음악을 모를 수는 없다. 매년 9월이면 라디오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그루브의 고전인 <September>, CF 배경음악과 시트콤의 간주로 자주 쓰인 <Boogie Wonderland>, 마음 한구석을 싸하게 만드는 러브발라드의 명곡 <After the Love Has Gone>, 오묘한 매력을 말로 다 할 수 없는 <Fantasy> 등 이들의 노래는 어두운 무도회장에서도 브라운관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았다. 딜레마는 거기 있다. 지나온 시간에 그들의 전성기가 있다. 은비늘처럼 반짝이는 화려한 재킷에 복숭아뼈가 보이는 정장 바지를 입고 색깔있는 양말에 오묘한 색의 구두까지 신은 EWF의 멤버들이 무대 위에서 땀을 흘리며 온 세상을 그루브로 몰아넣던 시간은, 멤버들이 파킨슨병으로 쓰러지고 색소폰의 돈 마이릭이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면서, 그리고 앨범들이 부진을 보이면서 추억으로만 남을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이 가슴 뛰는 음악을 들고 돌아온 것이다.

블랙 아이드 피스의 ‘윌 아이 엠’이 참여한 앨범 첫곡 <Lovely People>부터 예사롭지 않다. 고전적 브라스 세션이 ‘빠바바바방!’하고 울려퍼지는 가운데 디스코의 리듬이 힙합과 절묘하게 얽혀들어간다. 어깨를 들썩이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리듬에 몸을 실은 <Lovely People>이 ‘요즘 스타일이 가미된’ 흥겨움을 안겨준다면, <To You>는 이른바 정통 발라드다. 브라이언 맥나이트의 보컬은 때로 애절하게, 때로 시원하게 브라스 세션에 올라탄다. EWF만큼이나 향수를 자극하는 이름이 또 하나 등장하는데, <The Way You Move>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케니 지가 그 주인공이다. 미끈하게 흐르는 색소폰 소리는 그의 전성기를 또렷하게 떠올리게 한다.

EWF 전성기 때 블랙 뮤직이 지금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가, 그리고 그 차이는 어떻게 융합되어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앨범이 <llumination>이다. 음악과 함께 나이들고, 음악 덕분에 그루브를 유지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반가운 재회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