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날마다 일요일이길 원했다. 학교에 가지 않고, 나른하게 집에서 보내는 날들. 나이가 들면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안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프리랜서라면 오히려 일요일을 맞이하기가 부담스럽고, 무직자라면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진정한 일요일은 만사에서 놓여나, 평온하게 쉴 수 있는 날이다. 해야 할 일들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거나, 어제와 똑같은 오늘 때문에 한숨을 쉬고 있어서야 진정한 일요일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일요일은 온다. 누구에게나. 아니, 어쩌면 일요일은 반드시 쟁취해야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시다 슈이치의 <일요일들>은 그 ‘일요일’을 테마로 엮은 연작소설집이다. 이전 세대와는 달리, 아메리카적인 사유에 익숙한 젊은 작가 요시다 슈이치는 인생의 일요일을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차분하게 그려낸다. 요시다 슈이치의 걸작은 역시 <퍼레이드>라고 생각하지만, <일요일들>의 나른함도 꽤 마음에 든다. <일요일의 운세>의 다바타는 명문대를 나와서 금융회사에 잘 다니다가, 여자의 유혹에 빠져 야반도주를 한다. 그 뒤로 그는 숱한 여자들에게 이끌려다니며 주변부 삶을 살아간다. 그에게는 이제 뭔가를 이루겠다는 목적이 없고, 당연히 야망 같은 것도 없다.
하지만 ‘너처럼 살아도 한평생, 나처럼 살아도 한평생’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다바타의 오늘은, 일요일이다. ‘혹시라도 오늘밤 갑자기 자기가 모습을 감추면 도모미는 눈물을 흘릴까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울겠지.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눈물을 그치게 될 날도 오겠지. 아니,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거라 우긴다 해도, 그날은 꼭 오고야 만다. 울음을 그칠 날이 올 때까지 곁에 있어주면 된다고 다바타는 생각했다.’
일요일에는 목적이 없다. 단지 그것 때문에, 일요일이 그토록 평온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요일이 그들을 평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요일을 대하는 무욕의 자세가 평온을 불러오는 것. 일요일이 온다고 해서, 괴로움이나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일요일은, 그것들을 더 일상적으로 바라보게 도와줄 것이다. ‘처음엔 자기보다 몇 배나 더 큰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하다보니 자신이 그렇게 변한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괴로움의 끝에는 도대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로 그 차이였다. 부조리한 괴로움은 내일을 기다려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을 알고 있지만, 거기에 묶여 아귀다툼을 벌이지 않는 것이 일요일의 자세일지도 모른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그렇게 떠도는 삶을 그린다. 뿌리 없음이라고나 할까, 그게 현대인이라고나 할까. 나는 기꺼이 그 뿌리 없음을 택하고 싶다. 그 결핍이, 그 부조리함이 뭔가를 더 절실하게 만들 거라고 믿기 때문에.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잊히지가 않아. 인간이란 건 말이다. 잊으면 안 되는 걸, 이런 식으로 맘에 담아두고 있는 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