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술버릇은 고맙게도 ‘행복’이다 밑도 끝도 없이 행복해지고 나른해진다.
술자리에 내가 남몰래 흠모하는 사람이 있거나 꿈이 아니고는 절대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누군가가(음… 예를 들면 브리트니 스피어스?) 함께 있다면 그 행복은 제곱이 된다.
그날의 술자리는 너무 행복했고 꿈같았다. 왜냐하면 이선희가 그 자리에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마냥 편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의, 짝사랑조차 불손하게 만드는 주일학교 여선생님스러움은 주변 몇 미터 내의 공기를 깊은 숲처럼 만들어버리는 강한 힘을 가졌다.
우리 모두는 많이 취해 있었다. 키득키득 웃을 일에도 껄껄껄 웃을 만큼 다들 기분이 좋았다. 무심결에 곁에 누군가의 옆얼굴을 보면 괜히 미소가 지어지고 일심동체 싫어하는 연예인 뒷담화를 나누다 친구가 내뱉는 구속될까 진심으로 염려되는 청산가리급 독설에 탄성하다가도 과연 내가 진정 진심으로 열심히 씹고 있는가에 대해 반성도 해보고…. 건배~ 남발한다 욕도 먹지만 결국은 잔을 툭 부딪쳐주는 크리스마스 같고 긴 연휴의 둘쨋날 같고 기대 이상의 선물을 받은 생일날 같은 밤이었다.
나는 그런 밤을 ‘아무것도 빛나는 것이 없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어떤 것도 특별한 것이 없는 그 시간. 부러움도 야비한 멸시도 없이 모든 이들이 순하고 평등해지는 그 시간. 깊은 호수 같던 가수 이선희가 지긋지긋하게 싸웠지만 덕분에 정이 들 대로 들어버린 둘째누나처럼 살가워지는 그 시간.
하지만 누군가가 아무것도 빛나는 것이 없는 시간을 밝히기 시작했다. 울며 했던 이야기를 또 해서 싫은 소리 좀 했더니 주먹질을 하더니 상을 뒤엎고 집에 간다고 칼같이 일어나 나가더니 얼마 못 가 잠들어 있더라는 극악의 술주정을 떨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누군가가 들릴 듯 말 듯 고요한 음성으로 노래를 불렀을 뿐이다. 그녀는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불렀다. 이선희가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부르는 시간은 분명 빛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