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마다 10월이 다가오면 전화 통화를 맺는 말이 “그럼, 부산에서 뵙고 한잔해요”로 변한다. 말 그대로 지킨다면 부산영화제에 가서 3박4일 영화보기를 전폐하고 만남의 자리를 이어달리기해야 할 참이다. 내게 인사를 건넨 분들도 마찬가지리라. 곰곰 생각하면 아리송하다. 영화인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일하다가 1년에 한번 견우직녀처럼 해후하는 것도 아닌데, 약 360일을 보내는 서울에서는 뭘 하다가 꼭 부산에서 서로를 보고 싶어하는지. 부산영화제는 이를테면 불꽃놀이나 동해 일출과 비슷한 감흥을 영화계 관련 업종 종사자에게 주는 게 아닐까. “(어찌됐든) 거기에 있어야 한다”는 최면 같은 것. 그나저나 올해는 가기 힘들 것 같은데.
#2 기자 절반이 부산으로 내려간 <씨네21> 편집실은 매우 정숙한 마감을 치른다. ‘부산안와’ 휴대폰에 날아든 담당사 PD님의 문자 메시지. 물음표도 벗고 훌쩍 달려온 단 네개의 글자가 많은 말을 전한다. 축제의 흥분, 바닷바람, 달콤한 술 향기가 한꺼번에 코를 간지른다. 이튿날 오전, 얼마 전 뵐 기회가 있었던 안성기 선생님이 부산행 공항에서 전화를 주셨다. “부산에 오면 만나요.” 부산에 가도 공무로 분주한 분을 뵙긴 힘들겠지만, 훈훈한 목소리에 마음이 들썩인다.
#3 토요일. 영화제는 절정이겠지. 취재를 마치고 초저녁 한강을 혼자 전철로 건너오려니 속이 허하다. 추석이나 설 연휴의 서울은 해방구였는데, 오늘은 썰물이 덩그러니 남겨둔 빈 병이 된 기분이다. H감독님께 전화를 해볼까 궁리했으나 생각해보니 한창 부산에서 ‘관객과의 대화’ 중이시다. 영화계와 무관한 친구는 첫마디가 “부산은 어때?”다. 서울에 있노라 하니 적잖이 실망한다. 심지어 업무태만 아니냐는 투다.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부산에 있고, 영화계 밖의 친구들은 내가 부산에 있는 줄 안다. 텅 빈 도시에서 눈뜬 <오픈 유어 아이즈>의 주인공이 생각난다.
#4 일요일. “아니, 부산영화제 간 줄 알았더니만 여긴 웬일이냐?” 늘 하던 대로 휴일에 찾아뵌 부모님들까지 생뚱맞게 보신다. 마침내 결심이 선다. 내일이라도 가야겠다. 여행 시간을 빼기 위해 서둘러 다음주 기사쓰기를 시작한다. 영화제 시간표를 챙기고 기차를 예약하고 숙박비 할인쿠폰을 출력한다. 그러나 마지막 환난이 닥친다. 체했나보다. 속이 쓰리고 구토가 연신 치민다. 꾸리다 만 배낭을 옆에 두고 신음하는 동안 새벽이 온다.
#5 야망은 종기와 비슷한가보다. 뿌리를 뽑기 전에는 계속 발열하며 부어오른다. 결국 갈등을 접고 못 다 쓴 기사가 든 노트북을 배낭에 넣어 역으로 달렸다. 기차에 오른 것만으로 큰 일을 해낸 것 같다. 거기 부르는 사람도, 장한 임무도 없건만 이 안달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혹시 공동묘지나 명화가 그득한 미술관에서 기운이 느껴지듯, 부산에 모인 수많은 영화에서 나오는 ‘영령(映靈)’의 부름 같은 걸까. 아무도 모르는 소동 끝에 당도한 부산에서 두편의 영화를 보는 동안 평화가 돌아오고 배앓이도 가라앉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노트북을 두들겨 기사를 마감했다. 복통과도 같았던 나의 부화뇌동은 그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