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를 살아도 이미 시대를 다 살고 간 인물처럼 기억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이 낳은 기념비적인 흑인여성 포크록 싱어 트레이시 채프먼도 그런 느낌을 간혹 준다. 미국 대중음악사에 전례없이 흑인여성이 어쿠스틱 기타를 집어들고 튀어나와 레이건 정부를 비판하고,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70살 생일 공연에 게스트로 초청돼 열광적 반응을 이끌었을 때가 1988년이다. 그리하여 미국 포크록 뉴웨이브의 기수로 평가받게 된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 오래전 일 같다.
올해로 음악활동 17년째에 접어든 트레이시 채프먼은 <Let It Rain> 이후 3년 만의 신보 <Where You Live>를 최근 발표하면서 모 TV쇼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사회자는 정규앨범만 8개를 내놓은 뮤지션에게 그 17년 전 기억을 물었다. 처음 어쿠스틱 기타를 접하게 된 훨씬 오래전 이야기까지 하고 난 뒤에야, 채프먼은 신보 타이틀곡을 설명할 기회를 얻었다.
그녀가 말하는 <Change>는 삶을 가장 잘 영위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일상의 관습에서 벗어나 우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용기에 관한 노래다. 지나치게 강한 정치적 비판의식을 거두고 화해와 포용의 메시지를 강조하기 시작한 채프먼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현재 우리에게 참 필요한 것들을 말하고자 한다. 더 깊고 아름다워진 목소리로, 더 심장박동에 가깝게 울리는 멜로디로, 더 겸허해진 사운드로, 고국의 비인도적 야심을 언급하고 과거에 머무르지 말 것을 종용하며 내면의 진심에 귀를 기울이자고 한다. 그녀는 달콤한 휴머니즘에 앞서 감당해야 할 것들을 일깨우는 시인이다. 커다란 강물은 개울보다 조용하게 흘러도, 오랜 시간 뒤에 더 넓은 면적의 땅을 깎아낸다. 낡아버린 듯한 채프먼은, 성찰과 반성을 호흡처럼 여기는 큰 강물 같은 뮤지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