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애니메이션 <심슨가족>에서 봤던 에피소드 중에 심슨네가 가족상담을 하러갔던 게 있었다. 회사 야유회에 갔다가 화목한 다른 가족들과 달리 아내는 술 취해 헤매고 애들은 싸우는 걸 보면서 호머는 자식보다 더 아끼던 텔레비전을 팔아 상담비용을 마련한다. 실패하면 치료비의 몇배를 물어주겠다고 장담하는 이곳은 전기충격으로 치료를 한다. 가족이 모두 전기충격모자를 쓰고 자기가 버튼을 누르면 고통받는 상대방을 보면서 반성하도록 유도한다는 게 그 테라피인데 심슨네 가족들은 상대방이 발작하는 걸 보면서 즐거워하며 더 신나게 버튼을 눌러대는 탓에 결국 상담자는 두손 들고 벌금을 물어준다. 그 돈으로 더 좋은 텔레비전을 사서 진짜 화목한 가족이 된다는 줄거리였다.
왜 이 에피소드를 썼느냐, 원만한 가족을 꾸리려면 돈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말하기 위해서다. 심슨 가족이 화목해진 건 성격을 고쳐서가 아니라 공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겠으나 어쨌거나 돈은 중요하다. 새삼스럽게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미스터주부퀴즈왕>의 결말이 나를 분노하게 만들어서다.
비범하지는 않지만 <미스터주부퀴즈왕>은 꽤 재미있는 영화다. 무엇보다 남성전업주부를 보는 시선이 밉지 않다. 가사에 적응 못해 허둥거리거나 지나치게 여성화된, 그러니까 억지스럽게 희화화한 모습으로 남성전업주부를 그리고 있지 않고 무엇보다 꽤 괜찮은 주부 캐릭터를 한석규가 연기한다는 건 나름 매력적이다(그러나 요즘 젊은 주부들이 한가하게 오순도순 모여 고스톱을 치고 놀 거라고 생각하는 건 남성감독의 올드한 착각이라고 본다). 어머니와 함께 오붓하게 김치를 담그는 진만의 모습도 꽤 근사하다. 진만을 보다보면 돈 많이 벌어오는 마초남편을 두는 것보다 이렇게 능력있는 주부남편을 두는 게 더 나을 거라는 확신도 든다.
그런데 말이다, 마지막에 결정적으로 진만은 나를, 그리고 이 세상 많은 주부를 배신했다(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여기서 읽기 중단하시길). 돈 안 벌어오는 거야 뭐라 할 수 없겠지만 굴러들어온 돈덩어리를 왜 걷어차냔 말씀이다. 물론 돈보다 가족간의 사랑이 중요하다는 아름다운 교훈을 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진짜 이 가족이 행복해지는 길은 화해하기 위해 결단을 한 수희와 진만이 보기 좋게 호흡을 맞춰 퀴즈왕이 되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 진만네 가족은 더 분위기 안 좋아질 것이다. 쪽팔린 거 무릅쓰고 무대 위에 나섰건만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3천만원을 날려버린 남편을 아내가 좋게 볼 수 있겠나. 날아간 곗돈이 우발적 사고라면 퀴즈왕 포기는 엄연한 귀책사유다. 비난받아 마땅한 과실인 것이다. <미스터주부퀴즈왕>은 하나는 알아도 둘은 모르는 영화다.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굴러들어온 돈을 포기하는 건 전혀 유쾌하지 못한 반전이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