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슈퍼맨의 어린 시절 같은 건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미국에서 나온 만화는 읽지 못했고, 영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TV시리즈로만 만났던 슈퍼맨은 지루한 영웅이었다. 엑스맨처럼 선천적인 결핍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스파이더맨처럼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청춘물을 좋아해도, 클라크 켄트라는 캐릭터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다. 만화에서는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고 많은 변화가 있다는 말도 있었지만 설마 TV에서 미국의 최고 영웅을 훼손할까, 하고 넘겨짚었다. 그냥 가볍게, 청춘의 빛이나 볼까 하는 기분으로 <스몰빌>을 만났다.
그런데 의외로 재미있었다. 시즌3, 4로 가면서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스몰빌>은 특수한 능력을 가진 아이가 그저 악당과 싸우는 이야기가 아니다. 운석이 떨어지면서 돌연변이가 된 사람들이 있고, 마법과 저주도 존재한다. 전통적인 범죄물과 청춘물의 매력도 잊지 않는다. 클라크는 자신의 능력을 감추면서, 평범한 인간처럼 살아가야 한다. 비밀 속에서 살아야 하는 클라크에게도 사랑이 찾아오고, 우정도 나누어야 한다. 숙적 렉스 루서와의 애증어린 만남도 이채롭고, 스몰빌과 메트로폴리스의 공간을 대비하는 솜씨도 탁월하다.
프리퀼이란 것은, 속편과 다른 의미의 즐거움이 있다. 프리퀼은 근원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근원을 다시 설정함으로써, 이미 구축된 영웅을 재창조할 수도 있다. <스몰빌>에서 가장 흥미로운 설정은 슈퍼맨이 원래는 지구를 정복하고 지배자가 될 운명으로 왔다는 것이다. 클라크는 그 운명을 거부하려 하고, 자기 자신의 본성과도 맞서야 한다. <스몰빌>은 매력적인 터치로, 슈퍼맨을 다층적인 캐릭터로 재창조한다. 그래도 엑스맨이나 데어데블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에 누적되는 슈퍼맨의 고통에는 현실감이 있다. 선인과 악인의 경계에서 머무는 렉스 루서가 슈퍼맨의 숙적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버피와 뱀파이어>도, <스몰빌>도 모두 고등학교 시절에서 출발한다. 이미 몸은 성인이 되었지만, 그 무엇도 선택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시기. 그 시절이 흥미로운 것은, 그 무책임에서 비롯되는 열정과 혼돈이다. 코앞에 현실이 닥쳐왔음을 알기에, 도망치면서도 도망칠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그 나른한 무기력감과 들끓는 욕망의 혼돈 속에서 방황하는 것. 제아무리 슈퍼맨이라도, 그건 감당하기 어려운 시기다. 버피는 운명을 받아들였지만, 클라크는 운명 대신 자신의 의지를 택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정답이 될 수 없고, 평온이 찾아오는 일도 없다. 그들도 알기에, 이미 택한 길 위에서도 끊임없이 흔들리는 게 아닐까. 슈퍼 히어로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악당이 도전하는 것처럼, 나이가 들어도 혼돈은 사라지는 법이 없으니까. 다만 잊어버리고, 다만 도망치는 것 외에는. 단지 청춘에는 그 혼돈을 태워버릴 열정이 있기에, 그걸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