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들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요즘 후배들은 도대체 술을 안 마셔. 왜들 그렇게 몸을 사리는지, 원.”
‘후배’라는 말을 신입사원, 신참, 쫄따구… 뭘로 바꿔도 다 통한다. 요컨대 ‘요즘 애’들이 술을 잘 안 마신다는 거다. 이런 푸념은 주로 누가 할까? 아마 까마득히 높은 분은 아닐 것이다. 그런 분들은 저 아래 신참들이 술을 마시든 게토레이를 마시든 별 관심이 없다. 대체로 군대에선 상병급, 회사에선 팀장급, 대학에서는 3학년쯤 되는 사람들이 신참들의 주량에 관심이 많다. 상병이 되는 데에는 1년쯤, 3학년이 되는 데에는 2년, 팀장이나 작은 회사 사장이 되려면 적어도 5년은 걸리는데, 그렇다면 그 몇 년 사이에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정말 ‘요즘 애’들은 예전보다 술을 덜 마시게 된 것일까? 혹시 ‘요즘 애들’ 위장은 알코올분해효소가 예전보다 덜 분비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사소한 궁금증도 잘 못 참는 나는 우선 주류 판매량 통계를 살펴본다. 이 통설을 입증하려면 젊은이들이 주로 먹는 술인 소주나 맥주의 소비가 줄거나 해야 하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고 오히려 소주 판매량은 소폭 늘기까지 했다. 통계까지는 볼 것도 없고 신촌이나 강남역에 나가보면 ‘요즘 애들’이 술을 안 먹는다는 말을,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다. 여전히 잘 먹고 잘 마시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요즘 애들이 술을 안 마신다’는 이야기를 내가 ‘요즘 애들’ 시절부터 들어왔는데 아니 그렇게 매년 눈에 띄게 후배들이 술을 안 마시는 추세가 계속됐다면, 아마 지금쯤 우리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만큼이나 술 안 마시는 나라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금요일의 도시는 언제나 인사불성이다.
그럼, ‘요즘 후배들은 술을 안 마신다’는 이 이상한 신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모 영화잡지의 전 편집장께서 흥미로운 힌트를 제공해주셨다. 편집장 시절, 그분 역시 후배 기자들이 몸을 사리는 현실을 개탄해 마지않으셨다고 한다. 1차만 끝나면 영어학원이니, 헬스클럽이니, 다른 약속이니 하며 모두 사라지는 후배들…. 아, 언제부터 언론계가 이렇게 망가졌던가! 총명한 후배들과 허심탄회하게 영화계와 언론계의 현안에 대해 밤을 새워 토론하고 싶었던 이 편집장은 하는 수 없이 뿔뿔이 흩어지는 후배 기자들을 원망하며 홀로 긴긴 밤을 지새워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편집장에서 물러난 뒤에 누군가가 그분에게 비밀을 속삭여주었다. 후배 기자들이 술을 안 마시긴 뭘 안 마셔? 단지 그들은 편집장과 함께 마시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눈치없이 붙잡고 늘어지는 편집장을 따돌리느라 후배들은 곳곳으로 흩어졌다가 모처에 다시 집결하여 밤새도록 술을 펐던 것이다. 편집장이 하는 일이 뭔가? 기자들 갈구고, 기껏 열심히 써오면 빨간 줄로 죽죽 긋고, 때로는 아예 기사를 빼버리기까지 하는, 공포의 대마왕이 아닌가.
출판계에도 눈치없는 사장님들이 꽤 있다. 출판이라는 게 워낙 소규모다 보니 사장님들은 사장이 된 뒤에도 내심 자신 역시 선배 편집자(혹은 영업부원)일 뿐이라고 여긴다. 회사는 가족으로, 직원은 친척 동생쯤으로 생각하며 사랑하고 아낀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당신 생각’이다. 월급 타가는 사람들 생각은 다르다. 사장은 사장이고 데스크는 데스크고 과장은 과장이고 상병은 상병이다. 사장과 앉아서 도대체 누굴 씹는단 말인가? 결국은 사장님 훈계나 듣게 마련이다. 아니, 동료들과 모여 앉아 권커니자커니 사장 흉도 보고 뒷담화도 까는, 흥미진진한 술자리가 곧 펼쳐질 텐데, 왜 사장 앞에서 고개 숙인 채 말라비틀어진 훈제족발이나 먹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얼마 전 예의, ‘요즘 직원들은 술을 안 마신다’고 푸념하는 어느 회사 사장님께 이렇게 말해주었다. “사장님, 직원들에게 씹혀주시는 것까지가 사원복지입니다. 금일봉이나 주고 일찍 들어가서 주무세요.” 진실은 고통스럽다. 그들은 술을 안 마시는 게 아니라 당신과 마시는 게 싫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