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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의 영사기사 김영혜
오정연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5-10-13

영사기사는 내 운명

은막 위에 흩뿌려지는 빛의 향연. 이 집단적인 최면에 매혹된 사람이라면, 그러한 마법을 가능케 하는 영사기사의 존재를 한번쯤 생각해봤을 것이다. 영화광들에겐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서울아트시네마의 영사실을 지키는 숨은 일꾼을 만났다. 작년 여름 영사기사 자격증을 딴 이후, 서울아트시네마를 거쳐간 모든 영화의 필름을 직접 다룬 김영혜씨는,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정규 영사기사 한명 갖추지 못했던 서울아트시네마의 운영진이 ‘정책적으로’ 육성한 전문인력. 그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이라면 주옥같은 영화 못지않게 한번쯤은 떠올리며 감사해야 할 숨은 일꾼이다.

-문화학교서울 시절부터 시네마테크와 인연이 깊다고 들었다.

=1997년, 백수 시절 처음으로 문화학교서울의 회원이 됐다. 당시에는 개봉영화는 별 흥미가 없었고 뭔가 다른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2001년인가 2002년에 운영회원이 됐다. 연말에 송년회가 있다길래 직접 구운 고구마파이를 싸들고 갔는데, 그때 다들 좋게 봐준 것 같다. (웃음)

-관계자 중 누군가는 영사기사로 ‘길러졌다’는 표현을 쓰던데.

=2000년쯤 인디포럼에서 행정 일을 맡았는데, 그쪽 일은 나와는 정말 상극이었다. 이후 기술파트로 옮겼는데 아늑한 영사실 분위기가 참 좋더라. 그때부터 영사기사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격증 시험을 위한 학원 같은 게 있나.

=필기는 혼자서 공부해야 하고, 실기는 도제식으로 배워야 한다. 아는 사람 소개로 CGV에서 7개월 동안 영사실에서 일하면서 실무를 익혔다. 시험은 1년에 두번 있는데, 실기시험은 적어도 3번 이상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자격증을 따기까지 2년 정도 걸렸다.

-그래도 개봉관에서 볼 수 없는 영화를 맨날 볼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

=절대 그렇지 않다. 영사실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닐뿐더러, 일할 때는 대부분 뭔가 사고가 나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한 상태다. 평균 50분에 한번 정도 영사기를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밖에서 잠시 쉴 때도 늘 시간을 체크해야 한다. 일반적인 영화를 보더라도 프린트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일종의 직업병이다.

-영사기사가 된 것을 후회할 때는 없었나.

=후회할 이유는 없다. 남들이 못 만져보는 필름을 직접 다룰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기계를 좋아해서 적성에도 맞는다.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프린트도 간혹 있고, 언제나 신경을 써야 하긴 하지만.

-사고도 잦을 텐데.

=남들이 모르는 자잘한 사고야 언제나 일어난다. 얼마 전에는 고다르의 영화를 틀다가 릴이 잘못 끼워지는 바람에 돌아간 필름이 그냥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났다. 마지막 릴이어서 상영은 그대로 하면서도, 바닥에 점점 쌓여가는 필름을 보는 그 심정은…. 사실을 알리는 게 도리일 것 같아서 프랑스 배급사에 경유서를 넘겼는데, 그쪽에서 오히려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바람에 한시름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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