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순이를 떠나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환하게 웃는 큰 눈에 잠시 물기가 어리는 듯했다. 여러 감정이 오가는 듯 표정은 자꾸만 바뀌었다. 금순이로 살아온 지 7개월여, 매일 만나온 동료들, 시청자들과 이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터, 연기자로 늘 마주할 수밖에 없는 후련하지만 안타까운 헤어짐이다.
금순이 떠나보내기 힘들어 아기업고 배달다니면서도 웃음잃지 않는게 금순이다운 것 따뜻함 전파한 보람 느껴
27일 저녁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30일 마지막 회를 앞둔 문화방송 <굳세어라 금순아>의 종방연이 열렸다. 잔치의 주인공 한혜진(24)은 전날 밤샘 촬영을 거쳐 이날도 종방연 직전까지 마지막 촬영을 마쳤음에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힘겨워도 밝게 살아온 금순이의 모습이 겹쳤다.
“미니시리즈 3편을 하는 것처럼 촬영 일정이 정말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대본에 많이 충실하지 못하고,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부분들은 못내 아쉽네요.”
한혜진은 <굳세어라 금순아>로 다시 태어났다. 드라마가 시작했을 때 많은 이들은 그를 어렴풋 어디서 본 듯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한혜진은 이미 한국방송 아침드라마 <그대는 별>, 문화방송 <영웅시대> 등 10여편 드라마에 출연한 바 있다. 그때는 알아보는 이들이 많지 않았는데 이젠 다들 한혜진을 보며 금순이를 부른다. “금순이라는 캐릭터가 한몫을 했어요. 엄청난 시련을 맞고서도 밝고 건강하게 이겨나가는 금순이의 모습을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신 거죠.”
금순이 캐릭터가 한혜진의 진면목을 보여준 것이다. 한혜진은 드라마 초반 금순이의 모습을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다. “초반부터 심상치 않은 외모”는 물론이고, “삶에 대한 열정과 긍정적 모습을 지닌 따뜻한 사람”으로서 말이다.
“배추머리를 하고 미용실 면접을 봤죠. 아기를 업고 힘겹게 녹즙 배달도 다녔어요. 그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금순이가 가장 금순이다웠다 싶어요.”
처음에 사람들은 금순이가 바보냐, 저능아냐고 비난했었다. 삶에 대한 긍정만으로 고난을 이겨나가려는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한혜진의 생각은 좀 달랐다.
“분명히 금순이 같은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힘든 상황에서도 굳은 의지로 이겨내는 사람들 말예요. 그런 모습이 바보같이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제가 잘 보여줘야지 하는 게 걱정이었죠. 100% 만족하긴 힘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금순이를 통해 가슴 속에 따뜻함을 가지게 돼서 고맙고 좋아요.” 그런 점에서 얼마 전 금순이의 결혼 문제가 주된 이야깃거리가 되면서, 사랑 앞에 굳세지 못한 금순이의 모습은 아쉬운 점이라고도 했다.
최근에는 금순이의 재혼을 두고 열띤 토론도 벌어졌다. 재혼에 대한 찬반도 논쟁 거리였지만, 아들 휘성이를 데려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놓고 의견은 더욱 갈렸다. 한혜진은 휘성이의 편에서 생각할 때, 데려가는 것이 옳다고 했다.
“주로 어른들은 휘성이를 시댁에 두고 가야 한다고 했고, 젊은 사람들은 데리고 결혼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것은 휘성이에요. 아이를 잘 기르기 위해서는 엄마가 데리고 가는 게 맞지 않을까요?”
이제 한혜진은 휴식에 들어간다. 쉬지 않고 2년여 줄기차게 뛰어다닌 현장을 벗어난 숨고르기의 시간이다. 금순이로 쌓은 내공을 자신만의 온전한 능력으로 되새김질해 돌아올 날을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한혜진은 알고 있는 듯했다.
며느리는 딸이 되고 새 남편은 사위 되고
새 가족상 보인 ‘굳세어라 금순아’
30일 163회로 끝나는 문화방송 <굳세어라 금순아>는 무엇보다 진일보한 ‘가족상’을 제시했다. 특히 가족에 대해 보수적 입장을 유지해온 일일 드라마가 보여준 변화라 의미가 크다.
“나금순과 구재희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로 결말을 맺지만, 여느 일일드라마의 단순한 해피엔딩과는 한참 다르다. 결혼식장 금순의 부모 자리에는 금순의 할머니와 함께 시부모인 노 소장 부부가 앉았고, 재희는 노 소장 집을 처갓집이라 부른다. 재혼과 동시에 남이 돼어버리곤 하는 전 시집 식구들과의 새로운 관계가 새롭다. 마지막회 가족 사진 촬영 장면도 <굳세어라 금순아>의 메시지를 함축해 보여준다. 노 소장 부부와 시완·성란, 재희·금순, 태완, 우주, 휘성이 다함께 둘러서 있다. 며느리는 딸이 되고, 며느리의 새 남편은 사위가 된 것이다.
금순이 캐릭터에 대한 칭찬도 많았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보다 앞서 주목받았다. ‘애 딸린 젊은 과부’라는 악조건에도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열어나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기존 일일 드라마 여성 캐릭터의 수동성을 벗어난 데 따른 호평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당당한 금순이가 재희를 만나면서 수동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못내 아쉬운 점이었다.
금순이뿐 아니라, 드라마의 비중있는 인물들이 대부분 홀어미였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금순이의 친어머니 영옥은 남편을 잃고 금순이를 놔두고 재혼한 뒤 죄의식을 안고 살아갔다. 재희의 어머니는 미혼모이며, 금순이의 동서 성란 또한 아들을 데리고 이혼한 뒤 재혼했다. 이런 인물 설정으로부터 드라마는 결혼·이혼·재혼 등 결혼제도와 모성의 갈등을 주된 이야기 거리로 끌어들였다. 기존 드라마와의 큰 차이점은 홀어미와 미혼모 등을 그리는 관점이었다. 홀로서기에 성공한 이들의 모습을 통해 변화하는 여성상을 담아낸 것이다.
그러나 같은 지점에서 한계도 이어진다. 늘상 이들 홀로 선 여성이 죄책감을 갖는 대목이다. 금순은 아들 휘성이 때문에 재혼을 망설이고, 재희의 어머니는 재희에게 아버지 없이 키운 것을 미안해한다. 금순을 두고 재혼한 영옥 또한 죄의식을 안고 살아간다. 어머니의 죄책감을 둘러싼 갈등 해결도 미봉에 가깝다. 금순이 자신을 버려두고 재혼한 어머니에게 신장을 이식해주고, 재희가 친아버지를 찾아 화해하며 갈등을 봉합하는 것도 일일 드라마의 대중성에 기인한 한계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세어라 금순아>는 여러 차별성 덕분에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평균 가구 시청률 27%를 기록했고, 50억원 제작비에 166억원 수익을 내면서 문화방송에 ‘효녀’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