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사이비 에로틱
진중권(문화평론가) 일러스트레이션 신용호 2005-09-30

대통령의 연정 제안이 때아닌 ‘사랑’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대통령의 구애는 소수 야당들을 향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거대 야당쪽으로 돌아섰다. 과거도 묻지 않고, 성격도 가리지 않고, 아담 사이즈에서 풍만한 글래머까지 닥치는 대로 덤벼드는, 그리스 신화의 사티로스를 연상시키는 왕성한 정력이다. 이런 대통령의 난봉질에 여론의 눈이 곱지 않다.

개혁적 매체부터 진보적 지식인까지 무분별한 연정을 비판했다. 그러자 대통령을 짝사랑하는 어느 여교수가 ‘왜 대통령의 진정성을 몰라주느냐’고 항변한다. 이분, 사랑 안 해봤나보다. 진정성이 있다고 어디 모든 사랑이 받아들여지던가? 또 사람들이 스토커를 비난하는 게 어디 그들의 사랑에 진정성이 없기 때문인가?

야당 대표를 향한 대통령의 줄기찬 애정 공세는 드디어 결실을 맺는다. 우리 유신 공주님께서 특별히 시간을 내주신다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이 만남의 자리엔 두 사람의 관계가 불륜으로 치닫지 못하도록 양쪽에서 세명씩 여섯 사람이 배석했다. 임금님은 둘이 동거부터 들어가자고 말했고, 공주님은 늘 하던 대로 수첩에 적힌 빅토리아 도덕에 따라 조신을 떨었다.

아무런 합의없이 끝난 청와대의 만남. 대통령은 이쯤에서 연정론을 접는 게 좋겠다. 이미 얻을 것은 다 얻은 상태가 아닌가? ‘거국내각’ 얘기는 원래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에서도 꺼냈던 얘기다. 정작 대통령이 거국내각을 하자고 하니,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에서는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발을 뺀다. 공주님의 이 변덕을 대통령은 꼬집고 싶었던 게 아닌가.

게다가 대통령은 이번에 연정이라는 말을 피해가며 ‘민생을 위한 거국내각’을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민생’ 얘기 들고 나온 수첩 공주가 머쓱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집 살림 왜 그리 못해 애들을 굶기느냐’고 비난해왔는데, 직접 들어와서 한번 살림을 해보라고 하니, 그건 못하겠다고 한다. 공주님의 무능을 대통령은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수첩 공주가 서민 살린다고 들고 나온 게 겨우 7조원의 감세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의 정규직 고용률을 자랑하는 게 서민 고통의 근원일진대, 소주세, 유류세 좀 깎아준다고 삶이 펴지면 얼마나 펴지겠는가? 세금 깎아줘야 지난번 법인세 인하의 경우처럼 그 혜택이 어차피 부자들에게 돌아갈 터, 그게 민생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 공주님의 위선을 대통령은 폭로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공주의 수첩에는 또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지역구도 극복은 행정구역 개편으로.’ 하지만 행정구역 개편은 이미 정치권에서 여야의 합의하에 논의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게 무슨 새로운 제안이라도 되는 양 들고 나오는 것은 허무 개그가 아닌가. 게다가 지역주의는 정치의 실패이거늘, 왜 그 해결책을 행정에서 찾는가? 이렇게 공주의 우둔함을 대통령은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한마디로 대통령의 연정에 진정성은 없다. 그는 공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한 게 아니다. 공주의 치장을 다 벗겨내고 달랑 특정 지역의 사랑을 나 혼자 받겠다는 이기심만 남겨놓았다. 이 나라 정치문화의 선진화를 위해 공주님의 그 이기심마저 벗겨낼 차례다. 그 준비는 열린우리당에서 하고 있다. ‘선거구제개편을 위한 특별위원회.’ 이게 대통령이 사이비 연정 공세를 통해 얻어내고 싶었던 게 아닌가.

그리고 이제까지 내가 한 얘기야말로, 그 누군가 자기 대신 해주었으면 하고 대통령이 기대하던 말이 아니었을까? 원하던 모든 것을 다 취하기도 했으니, 연정공세는 이쯤에서 접고, 당분간 꾹 다문 입으로 오르는 주가와 함께 경기가 풀리기만을 느긋하게 기다림이 가당치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