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지난 한해도 몇몇 사람들을 새로 만났지만 놈을 만난 건 그 가운데서도 가장 희한한 경우임에 틀림없다. 워낙 유명한 놈인지라 만나기 전부터 놈에 대해 웬만큼은 알고 있었다. <딴지일보>라는 희한한 물건 덕에 갑자기 유명해진 놈은 온갖 매체에 인터뷰가 실리고 있었고(온갖 매체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고 있었고) 나는 늘 인터뷰 사진 속 놈의 얼굴이 마땅치 않았다. 그것은 내가 사람의 인상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가 아니라 <딴지일보>라는 희한한 물건에 대한 지식인들(정확히 말하면 우등생 출신 성인들)의 열광 때문이었다.
<딴지일보>는 지식인들의 피자에 곁들여진 콜라였다. 지식인들은 패러디니 풍자니 <딴지일보>에 대한 여러 비평문을 제출해놓고 있었지만 그들이 <딴지일보>에 열광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 쌍스러움에, 그 톡 쏘는 맛에 있었다. 고매한 외양 속에 머리통 속에서만 쌍스러운 일탈을 거듭하는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관심사(이른바 시사문제를 비롯한)에 적당한 쌍스러움을 곁들인, 말하자면 품위를 유지하면서 공개적인 자극을 즐길 수 있는 이 세트메뉴에 흡족해할 만했다. 나는 <딴지일보>에 대한 지식인들의 그런 식욕이 비위에 거슬렸고 그런 식욕을 타고 유명해진 놈이 늘 마땅치 않았다.
놈을 실물로 만난 건 지난 여름 어느 날 하루감옥체험에서였다. 알량한 하루(‘하루감옥체험’이라는 말에서 ‘하루’와 ‘체험’은 정말이지 염치없이 어울린다)가 저물고 나와 놈을 포함 그날 체험에 참여한 민주 인사들(!)이 군중의 박수를 받으며(!) 연단에 올랐을 때 놈이 내게 다가왔다. “김규항 선생님이시죠.” “예.” “제가 팬입니다.” “고맙습니다.” 이놈 봐라, 했지만 순간 나는 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놈의 가치를 놈이 처한 상황만으로 규정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미안한 마음을 보상하느라 그날 밤 나는 <딴지일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날 밤 나는 내가 놈과 <딴지일보>의 소문난 콜라맛을 거슬려 하느라 존중해 마땅한 피자맛을 놓쳐왔음을 확인했다.
얼마 후 <한겨레21>에서 새로운 대담코너를 제안해오자 나는 선뜻 놈을 파트너로 추천했고 쾌도난담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 코너는 내게 얼마간의 재미와 얼마간의 자괴심을 남긴 채 해를 넘기고 있다. 덕분에 나는 놈과 적어도 한주에 한번은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었고 놈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놈과의 전화통화는 늘 “발랄한 동생입니다”라는 놈의 대사와 “식상하다”라는 내 대사, 이어지는 놈의 폭소로 시작되곤 한다. 놈과의 대화는 대개 자못 진지하지만 때론 몹시 쌍스러운데 그건 때로 내가 놈 이상으로 쌍소리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영민함이나 재주로 놈을 설명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놈이 영민하고 재주있는 건 사실이지만 놈의 가치는 놈이 체화된 근대인이라는 데 있다(그것은 자식을 철저히 방목함으로써 자기 세대의 전근대적인 가치를 대물림하지 않은 놈의 독특한 부모와 관련한 것이기도 하다). 운동권도 아니었고 이른바 학습 경험도 없으면서도 누구 못지 않게 세상을 또렷하게 알아보는 놈의 근대적인 분별력이야말로 놈의 가치이자 <딴지일보>의 세계관이다. 운동하고 연대하는 일에 대한 놈의 지나친 거부감, 알뜰하기 짝이 없는 놈의 이해타산이 여전히 내 비위를 거스르곤 하지만 놈의 그런 체화된 근대성은 그런 것들마저 놈의 스타일로 여기게 만든다.
시종일관 <조선일보>를 좃선일보라 부르며 골려대는(실제로 놈은 늘 <조선일보>를 끼고 다니며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놈의 머리통은 적어도 훨씬 계몽적이고 비장한 외양을 하고서도 <조선일보>보다 강준만을 더 상종 못할 상대라 여기는 지식인들(정확히 말하면 우등생 출신 허섭쓰레기들)의 머리통보다 훨씬 더 근대적이다. 언젠가 놈은 내게 말했다. “사람들이 나더러 이젠 뭔가 사명감 같은 걸 가져야 하지 않냐고 해요. 나는 그런 거 졸라 싫거든요. 나는 처음부터 이걸 재미있어 시작했고 지금도 재미있기 때문에 계속하는 거거든요.” 내가 대답했다. “조까라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