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연휴가 지나고, 본격적인 가을에 접어들었다. 찬란한 단풍, 풍성한 수확과 더불어 가을은 또한 사랑의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 바람과 함께 스멀스멀 떠오를 어렴풋한 첫사랑의 기억을 달래줄만한 한 편의 드라마가 준비됐다. 21일 시작하는 문화방송의 <가을 소나기>(극본 조명주, 연출 윤재문)다.
식물인간 된 여자의 친구와 남편사이 불륜 인간 내면 갈등 섬세히 짚는 정통 멜로 지향
식물인간이 된 여자와 그의 남편, 그리고 여자의 친구가 맺는 가슴 아린 사랑 이야기다. 결혼 뒤 혼인 신고도 하기 전에 아내가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자, 남편은 정성을 다해 아내를 간호한다. 첫눈에 반한 남자를 친구에게 양보한 여자는 친구가 식물인간이 되자 친구의 남편과 아픈 사랑을 다시 시작한다. 남자는 아내와 아내의 친구 사이에서 갈등하고, 여자는 친구와 친구의 남편을 두고 번민한다.
정통 멜로 드라마인 동시에 불륜극이다. 식물인간이라는 설정, 친구의 남편과 아내의 친구 사이의 사랑 등 소재는 많이 보아온 듯, 그리 신선하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이러한 설정들로부터 인간 내면의 원초적 갈등의 단면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인가가 극적 성공을 결정 지을 터다.
남녀관계를 둘러싼 딜레마가 극대화된 이유도 여기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두 여성의 우정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둘은 함께 자라오며 서로의 사랑과 인생을 오랜 시간 나눠왔다. 그래서 두 여성은 한 남성을 두고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기존 드라마의 여성 캐릭터들의 관계에서 한발짝 벗어나 있다. 식물인간 아내를 둔 남성의 정신적 혼돈 또한 어지럽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이상과 사랑을 그리워하는 현실적인 고독감 사이의 갈등은 개연성을 담보한다.
사랑과 우정 등을 내세우면서도 선택의 갈림길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망설이며 갈등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섬세하게 파고들겠다는 제작진의 설명이 일단은 와닿는다. 제작진은 “단순한 불륜·욕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선한 인간들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면의 질문들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이 조명주 작가의 뜻이다.
대본과 제작 의도는 그렇다해도, 연기자들이 이를 받쳐줄지는 미지수다. 두 여자를 모두 사랑하며 갈등하는 남편은 오지호가 맡았다. 식물인간 아내는 김소연이, 그의 친구이자 친구의 남편과 사랑에 빠지는 역은 정려원이 연기한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빼어난 눈물 연기를 보여준 정려원의 활약을 기대하는 이가 많다. 또 1년6개월 만에 한국 드라마에 복귀한 김소연의 식물인간 연기와 오지호의 멜로 연기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도 관심 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