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캐릭터 8명이 작은 카트를 타고 레이싱 경기를 벌인다. 바나나 자석 등 여러 가지 공격과 방어 아이템을 사용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고 또 달린다. 바쁜 직장인들도 “단 몇개의 키보드만 익히면 금방 게임을 할 수 있고, 3분 이내에 끝낼 수 있어 머리 식히기에 좋다”며 강추한다. 주인공은 바로 온라인 자동차 레이싱 게임 <카트라이더>. 지난해 6월 서비스를 시작한 <카트라이더>의 회원 수는 1200만명, 동시 접속자 수도 최고 22만명에 이른다. 이른바 ‘국민 게임’으로의 등극이다. 유저들의 구성을 보면 이는 더욱 확실해진다. 보통 온라인 게임 하면 10대들의 전유물이라고 인식하는데, <카트라이더>는 이를 완전히 깨부쉈다. 20대 유저가 전체의 40%를 넘고, 30대 이상도 10%에 가까운 정도. 도대체 무엇이 <카트라이더>를 국민 게임으로 만들었을까? 그 실마리를 조심스럽게 찾아보았다.
국민 배우 안성기에 국민 간식 떡볶이에 국민 여동생 문근영까지, 조금이라도 인기있는 상품에는 ‘국민’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그리고는 이를 소비하지 않으면 마치 국민 자격이 없기라도 하는 듯이 떠들어댄다. 그러다보니 울컥해서 국민 게임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오히려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기도 한다. 요즈음 국민 게임 칭호는 <카트라이더>에 돌아간 모양이다. 이는 확실히, <포트리스>나 <스타크래프트>를 국민 게임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다르다. 더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이 게임에서는 ‘국민’이라는 말이 몰개성적 찬사가 아니라 적확한 설명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카트라이더>를 만든 ‘넥슨’은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회사다. 세계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인 <바람의 나라>에서부터 시작해 <크레이지 아케이드 비앤비>, 그리고 <메이플 스토리>. 최소한 동네 학교 문방구에 붙은 포스터에서라도 한번씩은 봤을 것이다. <메이플 스토리>와 <크레이지 아케이드 비앤비> 역시 국민 게임 타이틀을 손에 쥔 적이 있다. 하지만 <카트라이더>는 다르다. ‘국민’이란 그저 ‘많다’는 말을 관용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광범위한 국민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소비자의 연령대는 게임을 만들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요소 중 하나다. 일단 연령대가 정해지면 이에 맞는 게임 요소를 좀더 많이 집어넣는다. 마케팅 전략이나 게임시장에 대한 예측이 제대로 행해졌다면, 실제 게임이 출시되었을 때 소비자 데이터를 수집해보면 해당 연령층의 소비가 가장 크게 나타난다.
연령에 따른 사용자 수를 그래프로 나타내보면 목표 연령대에 봉우리가 생겨난다. 예를 들어 <리니지>류의 다중접속롤플레잉(MMORPG)에서는 20대 중·후반대에서 이런 봉우리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20대 중·후반이 아니면 <리니지>를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사용자층은 이 연령대에 속한다. 다른 게임의 그래프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반면 <카트라이더> 그래프에서는 신기한 현상이 나타났다. 쌍봉이 생겨난 것이다. 10대 중반에서 하나, 그리고 20대 중반에서 다시 하나가 발견된다. 이는 <카트라이더>를 즐기는 사람들이 특정 연령대에만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10대와 20대 모두, 그리고 그 주위 일정한 연령의 사람들도 <카트라이더>를 즐기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뭐가 그리 특이할까 싶지만, 여러 연령대의 게이머에게 호소력을 가지는 게임이 한번도 없었던 국내 게임산업에서 이는 매우 특이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현상이 중요한 것은, 특정 연령대를 넘어서, 말 그대로 여러 연령대의 ‘국민’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국내 게임 제작사가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카트라이더>는 어떻게 국민 게임이 되었는가? 어떻게 해서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되었는가를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게임의 성공은 게임 자체가 어떤 재미 요소를 가지는가뿐 아니라 좁게는 게임시장의 환경, 넓게는 사회 전반의 어떤 요소들에 의해 결정된다. 이들 다양한 요소들이 어떤 식으로 작용했는지를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언뜻 보면 <카트라이더>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경쟁작들이 그만큼의 성공을 보이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의 방증인 셈이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카트라이더>만이 지닌 힘을 아주 조심스럽게 찾아보도록 하자.
친근하게 다가가기 ‘브랜드 파워+손쉬운 조작’
<카트라이더>가 국민적으로 플레이되기 위해선, 당연히 우선 국민적으로 알려져야 한다. 그리고 또한 최소한 국민적으로 한번쯤은 손에 대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선택한 첫 번째 방법은 ‘친근하게 다가가기’다.
사실 <카트라이더>는 다른 게임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출발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개발사 넥슨은 삼성전자를 제치고 미래 다니고 싶은 회사 1위에 꼽히기도 했다. 초등학생이 뭘 알겠냐고 비웃기에 앞서, <크레이지 아케이드 비앤비>나 <메이플 스토리> 등으로 넥슨이 얼마만한 인지도를 가졌는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게임의 후광을 업은 그림책도 나와서 출판계의 불황을 우습게 만들기도 했다.
<카트라이더>는 ‘자연스러운’ 뒷배경에 만족하지 않고, <크레이지 아케이드> 시리즈의 후속작이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강조했다. <크레이지 아케이드 비앤비>에 나왔던 캐릭터들이 더욱 크고 귀여운 모습으로 바뀌어 게임 속에 등장한다. <크레이지 아케이드 비앤비>를 플레이했던 게이머라면 일단 친숙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브랜드 파워만으로는 부족하다. 넥슨을 좋아하는, <크레이지 아케이드 비앤비>를 신나게 플레이했던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 이외의 사람들까지 끌어들이고 싶다면 <카트라이더> 자신의 힘이 필요하다.
<카트라이더>는 레이싱 게임이다. 한마디로 흔해빠진 장르다. 이미 많은 게임이 나왔고,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게임도 많지만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런데 묘한 것이, 인기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게임은 아니다. 레이싱 게임의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눈부신 반사속도와 절묘한 균형 감각과 대담한 승부사 기질과 그 밖에도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대부분 타고난 자질이고, 노력으로 혹은 근성으로 극복하기는 솔직히 어렵다. <카트라이더>를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 게임은 레이싱 게임의 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존 레이싱 게임의 벽을 깨버린다.
레이싱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핸들에 해당하는 방향키, 기어에 해당하는 숫자 패드, 여기에다가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 등을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 이런저런 키들을 여러 개, 한꺼번에 조작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보통 게이머들은 부담을 느낀다. <카트라이더>는 이런 복잡한 키 조작을 빼버렸다. 기본적 조작은 한손, 아니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여기에 틈틈이 부스터와 드리프트, 아이템 키만 곁들여주면 된다. 좀더 높은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더 복잡한 조작과 숙련된 움직임이 필요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면 이 정도면 충분하고, 충분히 재미있다. 이런 조작계의 편리함을 더욱 확실하게 해주는 것이 <카트라이더>의 화면 구성과 그래픽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화면 가득 머리 큰 캐릭터와 조그마한 카트가 등장한다. 레이싱 하면 당장 떠오르는 쉴새없이 스쳐 지나가는 트랙 혹은 도시들, 열광하는 관중, 확 트인 전경 등은 없다. 다른 레이싱 게임들이 전형적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카트라이더>의 게임 화면에서 차량과 운전자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은 이례적으로 크다. 다른 게임들과 비교하면 적어도 3배 이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캐릭터와의 일체감이 크다. 또한 ‘유아적 놀이 경험’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3살 이전 아이들의 장난감과 그 이후 장난감을 비교해보면, 어린아이용일수록 자세한 세부 사항은 생략하면서 무엇을 표현하는지 좀더 분명히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트라이더>의 그래픽은 유아적 경험을 유도하는데, 이는 게임이 가지는 쉽고 단순한 이미지를 한층 더 강화한다.
물론 단점도 있다. 단순하고 ‘유아적인’ 그래픽으로는 레이싱 게임이라면 마땅히 보여줘야 할 스피드가 제대로 표현되기 힘들다. <카트라이더>는 이 부분을 만화적인 연출을 사용해서 해결했다. 뿐만 아니라 만화적인 연출이 다시 게임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쉬운 게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임이라는 <카트라이더>의 이미지는 레이싱 게임을 어려워하고 불편해하는 게이머들의 선입견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쉬운 게임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카트라이더>가 ‘국민’ 게임에 등극한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 쉬운 게임들은 얼마든지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쉬운 게임들 중에서 <카트라이더>가 유독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또 다른 요소가 작용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