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의 아침, 누군가가 숲길을 걷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수영복 차림의 네드(버트 랭커스터). 친구 집에 들러 수영하던 네드는 이웃의 풀장을 하나씩 건너며 자기 집으로 간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친구들은 그를 낯설게 대하고, 과거의 기억 뒤로 아픈 상처들이 스쳐지나가며, 결국 그는 가려졌던 사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존 치버의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애증의 세월>은 일종의 알레고리다. 소비와 향락에 빠진 부르주아 혹은 기나긴 인생의 모험 끝에 초라한 자신을 돌아보는 영웅의 비극 말이다. 그리고 <애증의 세월>의 비극성은 영화의 스타일로 인해 더욱 강화된다. 이미 데뷔작 <데이비드와 리사>에서 유럽 뉴웨이브영화의 경향을 따른 프랭크 페리는 <애증의 세월>도 할리우드와 동떨어진 작품으로 만든다(일부 장면은 시드니 폴락이 연출했다). 리얼리즘과 아방가르드, 멜로드라마가 마빈 햄리시의 첫 영화음악과 맞물리는 가운데, 네드는 점점 비현실적인 인물로 변한다. <애증의 세월>은 죽은 자의 꿈속에서 펼쳐지는 의식의 흐름이거나 유령들의 재회일지 모르며, 그런 점에서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나란히 감상하기에 더없이 어울린다. 따사로운 햇살과 교외 저택의 풀장을 가지고 이리도 서늘한 영화를 만들기가 쉽지 않겠거니와 영화 내내 수영복 차림으로 연기하는 스타(사진)를 보는 것도 흔치 않은 경험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우리가 반드시 발견해야 할 영화란 생각이다. 부록으로 버트 랭커스터가 출연한 영화의 예고편 모음이 제공되는 DVD는 평범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