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분으로 변칙연장 ‘기선제압’ “무리한 제작 제살깎기 경쟁” 방송3사 모여 대응책 논의키로
최근 지상파 방송3사의 드라마가 70분을 넘어 80분까지 연장 방송되는 횟수가 잦아져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8월30일 문화방송은 월화 드라마 <비밀남녀>(극본 김인영·연출 김상호)를 애초 70분에서 80분으로 늘여 방송됐다. 이 바람에 밤 11시15분 방영될 예정이던 <피디수첩>이 15분 가량 늦게 시작됐다. 에스비에스도 8월29일 <패션70s>(극본 정성희·연출 이재규) 마지막회를 80여분간 방송했다.
뿐만 아니라 7~8월 새로 시작한 방송3사의 수목 드라마들은 1, 2회 방송시간을 일제히 70분에서 80분으로 연장했다.
8월23일 첫 방송을 시작한 한국방송의 <장밋빛 인생>(극본 문영남·연출 김종창)은 1회 때 80분 편성으로, 같은 시간대 경쟁작들보다 10분 더 길게 방송했다. 이 드라마는 방영시간 연장에 힘입어 첫 회 전국 시청률 18%대를 기록하며 수목 드라마 1위 자리에 올랐다.
이 때문에 2위로 밀려난 에스비에스 <루루공주>(극본 권소연 이혜선·연출 손정현) 시청자 게시판에는 “반칙 편성이다” “루루공주가 끝나고도 장밋빛 인생을 방송했기 때문에 시청률이 더 높게 나온 것이다”라는 등의 지적이 쏟아졌다.
그런데 시청률 조사회사 AGB닐슨미디어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루루공주> 역시 1, 2회 방송 때 80분 가까이 되는 변칙 연장 방송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드라마는 당시 같은 시간대 경쟁작인 한국방송 <부활>, 문화방송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따돌리고 20%대의 높은 시청률을 올렸다.
이처럼 방송사들이 드라마 방영시간을 변칙적으로 늘이는 것은 시청률 때문이다. 방송시간이 늘어나면 평균 시청률이 자동적으로 올라가 상대 프로와의 경쟁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일종의 기선 제압용인 셈이다. 문화방송의 한 드라마 피디는 “요즘은 경쟁사 드라마와 동시에 시작할 때 방영시간을 늘이는 게 다반사가 돼버렸다”며, “방송사들끼리 누가 길게 하는가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눈치작전으로 인해 애초 60분이던 미니시리즈는 첫 회 방송분이 70분으로 늘어났다가 곧이어 모든 미니시리즈가 전회 70분으로 제작하게 됐고, 이제 첫 회 방송분이 80분으로 늘어나는 기형적인 추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무리한 연장 방송이 잦아지다 보니 드라마 제작진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에스비에스의 한 드라마 피디는 “드라마 방영시간 연장은 제작진에게 무리한 노동 강도를 요구하고, 결국 드라마의 질 하락을 부르는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이 된다”고 지적했다.
방영시간을 10분 늘이는 게 대수롭지 않은 듯 보이지만 파생되는 문제점은 의외로 크다. 70분짜리 드라마가 80분으로 늘어나면 앞뒤 프로그램이 방해를 받는 데다, 1회 10분씩 5~6회만 지나면 실질적으로 1회를 더 연장하는 효과가 나서 제작진에게도 부담이 크다. 뿐만 아니라 ‘편성시간’이라는 시청자와의 약속을 어기며, 드라마 외에 다른 프로그램을 제 시간에 볼 시청자의 권리도 침해한다.
방송사 안팎의 비판과 우려가 높아지자 최근 방송3사 사장단이 모여 드라마 편성시간을 줄이는 방안을 논의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문화방송의 한 고위관계자는 “방송3사 사장단 논의에 이어 드라마국장들이 실무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며, “하지만 에스비에스가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합의가 쉽게 이뤄질지는 두고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