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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늘여 시청률 붙잡자” 첫회에 목숨거는 드라마들
윤영미 2005-09-12

80분으로 변칙연장 ‘기선제압’ “무리한 제작 제살깎기 경쟁” 방송3사 모여 대응책 논의키로

문화방송 월화 드라마 <비밀남녀>

한국방송의 수목 드라마 <장밋빛 인생>

최근 지상파 방송3사의 드라마가 70분을 넘어 80분까지 연장 방송되는 횟수가 잦아져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8월30일 문화방송은 월화 드라마 <비밀남녀>(극본 김인영·연출 김상호)를 애초 70분에서 80분으로 늘여 방송됐다. 이 바람에 밤 11시15분 방영될 예정이던 <피디수첩>이 15분 가량 늦게 시작됐다. 에스비에스도 8월29일 <패션70s>(극본 정성희·연출 이재규) 마지막회를 80여분간 방송했다.

뿐만 아니라 7~8월 새로 시작한 방송3사의 수목 드라마들은 1, 2회 방송시간을 일제히 70분에서 80분으로 연장했다.

8월23일 첫 방송을 시작한 한국방송의 <장밋빛 인생>(극본 문영남·연출 김종창)은 1회 때 80분 편성으로, 같은 시간대 경쟁작들보다 10분 더 길게 방송했다. 이 드라마는 방영시간 연장에 힘입어 첫 회 전국 시청률 18%대를 기록하며 수목 드라마 1위 자리에 올랐다.

이 때문에 2위로 밀려난 에스비에스 <루루공주>(극본 권소연 이혜선·연출 손정현) 시청자 게시판에는 “반칙 편성이다” “루루공주가 끝나고도 장밋빛 인생을 방송했기 때문에 시청률이 더 높게 나온 것이다”라는 등의 지적이 쏟아졌다.

그런데 시청률 조사회사 AGB닐슨미디어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루루공주> 역시 1, 2회 방송 때 80분 가까이 되는 변칙 연장 방송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드라마는 당시 같은 시간대 경쟁작인 한국방송 <부활>, 문화방송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따돌리고 20%대의 높은 시청률을 올렸다.

이처럼 방송사들이 드라마 방영시간을 변칙적으로 늘이는 것은 시청률 때문이다. 방송시간이 늘어나면 평균 시청률이 자동적으로 올라가 상대 프로와의 경쟁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일종의 기선 제압용인 셈이다. 문화방송의 한 드라마 피디는 “요즘은 경쟁사 드라마와 동시에 시작할 때 방영시간을 늘이는 게 다반사가 돼버렸다”며, “방송사들끼리 누가 길게 하는가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눈치작전으로 인해 애초 60분이던 미니시리즈는 첫 회 방송분이 70분으로 늘어났다가 곧이어 모든 미니시리즈가 전회 70분으로 제작하게 됐고, 이제 첫 회 방송분이 80분으로 늘어나는 기형적인 추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무리한 연장 방송이 잦아지다 보니 드라마 제작진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에스비에스의 한 드라마 피디는 “드라마 방영시간 연장은 제작진에게 무리한 노동 강도를 요구하고, 결국 드라마의 질 하락을 부르는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이 된다”고 지적했다.

방영시간을 10분 늘이는 게 대수롭지 않은 듯 보이지만 파생되는 문제점은 의외로 크다. 70분짜리 드라마가 80분으로 늘어나면 앞뒤 프로그램이 방해를 받는 데다, 1회 10분씩 5~6회만 지나면 실질적으로 1회를 더 연장하는 효과가 나서 제작진에게도 부담이 크다. 뿐만 아니라 ‘편성시간’이라는 시청자와의 약속을 어기며, 드라마 외에 다른 프로그램을 제 시간에 볼 시청자의 권리도 침해한다.

방송사 안팎의 비판과 우려가 높아지자 최근 방송3사 사장단이 모여 드라마 편성시간을 줄이는 방안을 논의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문화방송의 한 고위관계자는 “방송3사 사장단 논의에 이어 드라마국장들이 실무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며, “하지만 에스비에스가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합의가 쉽게 이뤄질지는 두고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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