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를 전공한 김형태는 스물다섯살 때 강원도 문막 어귀 빈 농가에 들어가 그림을 그렸다. 묵묵히 논일하는 농부를 바라보면서, 그는 부연설명 없이도 저 농부가 이해할 만한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다. <씨네21>에 17주간 글과 함께 연재됐던 그의 그림은 그렇게 투박하고 간결하다. “집은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고 쓴 글의 바탕에는 굵은 뿌리와 잔뿌리를 함께 내린 아담한 가옥이 공중에 덩그러니 부양해 있다. 사람에게 신념은 뿔과 같다고, 목과 머리칼도 없는 사람의 머리통에 선인장 같은 뿔을 심어놓는다. 김형태는 넓은 여백을 과감히 상상의 공간으로 남겨두고,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대상 하나만 큰 터치로 그려낸다. 사용하는 색은 웬만해선 열 가지를 넘지 않는다. 10초만 눈여겨보면 눈 감고도 따라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이같이 단순한 그림을 이해하려면, 그런데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그의 그림은 사고와 감정에 관한 추상적인 개념들 그리고 복잡한 단상들을 직접적인 정물화 형식으로 옮긴 추상화이기 때문이다. 오는 9월2일부터 16일까지 대학로에 위치한 갤러리 정미소에 여섯 번째 개인전을 하면서 김형태는 <김형태의 생각도감-생각은 날마다 나를 새롭게 한다>라는 책을 함께 냈다. <씨네21>에 연재된 17편의 도감과 함께, 세상과 사람에 관한 글·그림을 총 50편 묶었다. 아름다움, 그리움, 미디어, 이데올로기 같은 쉽게 정의내릴 수 없는 대상들을 그는 ‘무규칙이종예술가’라는 자유로운 직함을 달고 대담하게 고민, 분석한다. 짧게짧게 이어지는 부연설명을 미리 읽고 전시회를 찾으면 굵은 추상화 50점이 한결 친절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문의: 갤러리 정미소 02-743-5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