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프란셔스 본프레레 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결국 사퇴했다. 움베르토 마누에우 제수스 코엘요 전 감독이 우리의 곁을 떠났던 그날처럼. 감독이 죄인, 선수가 원흉, 협회가 무능, 언론이 조장, 여론이 사주했단다. 무엇이 이번 참사에 가장 혁혁한 전과를 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선택이 대패착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월드컵 예선을 통과시킨 외국인 감독을 몇 차례 시합에서의 부진을 이유로 몰아내는 지금의 정서는 그저 ‘광기’다. 이 상황에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겠다고 나설 외국 감독이 누구일지 정말 궁금하다. “아무도 오려 하지 않는다”가 냉정한 현실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생각난 사람은 발레리 니폼니쉬였다. 요즘 심심찮게 그에게 대표팀을 맡겨야 한다는 기사나 축구커뮤니티 게시판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오지도 않겠지만 절대 반대다. 온라인 폴에서 그의 이름을 클릭하는 사람들은 지금 그가 뭘하고 어디서 지내는지 알고나 있을까. 1998년까지 4년간 부천SK를 이끌던 니폼니쉬는 지역과 프로축구팬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았지만 인상적인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다. 이후 노정윤이 뛰던 히로시마 산프레체를 거쳐 중국 갑급 리그의 산둥 루넝을 맡았다. 현재는 상하이 센화의 사령탑을 맡고 있다. 이 노회한 러시아인은 여전히 아시아 프로축구리그를 떠돌며 자신의 축구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견해를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얼마 전 발견한 그의 인터뷰 내용이 생각난다. <해방일보> 기자가 “상하이 센화의 A라는 스트라이커가 유명하고 잘하는데 왜 그를 조커로 사용하고, 성적이 신통치 않은 B를 주전으로 기용하냐”고 그에게 물었다. 물론 팬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의견을 덧붙여서. 니폼니쉬가 답했다. “그것이 팬들이다. 그들은 식당에 들어와서 메뉴만 보는 것이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나와는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다”라고. 한때 그와 부천SK는 내가 다니던 대학에 연습경기를 하러 자주 왔다. 그들은 우리팀과 대등하거나 수세에 몰리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피치에 선 니폼니쉬 감독에게는 당황한 기색이 전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후일 대전 최윤겸 감독의 인터뷰에서 이에 대한 약간의 해답을 찾았다. “너무 모험적인 플레이를 해서 대학팀에 지는 일도 꽤 있었다”고 니폼니쉬의 수제자인 최윤겸 감독은 그 상황을 설명했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개막전에서 프랑수아 오망의 헤딩 한방으로 전 대회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침몰시키는 역대 월드컵 최고의 드라마를 연출한 이 명승부사 니폼니쉬조차 승부의 집착 따위로 자신이 축구에 대해 알고 있는 본래의 재미와 열정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대이변을 연출한 그는 자신의 팀에 대해 “카메룬 선수들은 영혼의 축구를 펼친다”라고 이야기했다.
‘지더라도 재밌는 축구’를 추구했던 니포사커(니폼니쉬의 축구를 일컫는 말)의 철학은 대다수 팬들이 한국 축구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의 정반대에 존재한다.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에서처럼, 어떤 날은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이기는 날만 응원하려면 애당초 그만두는 게 좋다. 그것이 본인도 그 팀도 위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는 절대 제대로 된 ‘경기는 계속될 수 없다’. 니폼니쉬는 떠났지만 니포사커는 남았다. 그것은 몇등이라는 일시적 성과가 아니라, 시스템이며 축구를 우리가 어떻게 즐겨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한줌의 가능성이다. 중국에서도 행복하게 축구 하세요, 니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