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말하는 이들을 취재하기란 쉽지 않다. 배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신의 오감을 통해 느낀 감정을 곧장 몸으로 폭발해낸다. 그 순간을 포착하기도 어렵거니와 다시 그 순간의 몸의 감정을 말로 추궁해서 끄집어내는 일만큼 막막한 것도 없다. 스턴트맨이라고 다를까. 스턴트라 통칭되는 움직임의 기본은 무술이라기보다 연기다. 도합 십몇단을 가진 고수라고 해도, 카메라 앞에 서려면 기본 발차기부터 새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지. 그들이 내지른 주먹과 뻗어찬 발이 스크린에서 매 순간 놀라운 복화술 연기를 선보이는 것도 묵묵히 땀방울을 훔치며 단단하지만 내밀한 몸을 만들었던 지난한 과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렵다 하더라도 <씨네21>은 몸이 만들어내는 그 놀라운 침묵의 대화들이 어떻게 가능한지 여전히 궁금했고,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먼저 새내기 스턴트맨을 추적했다. 여기에 이어 한국 스턴트 액션의 산실, 서울액션스쿨에 대한 현장검증기를 이어서 살펴보았다. 현재 한국영화 스턴트의 현황과 수준을 알고 싶다면, 충무로에서 활동하고 있는 200여명의 스턴트맨을 대표하는 무술감독들의 증언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의 토니 자 꿈꾸는 스턴트맨 2년차 최광락의 어떤 여름 날“스톱! 조심해야지, 이놈아!”
8월18일 AM 2:00 여의도 대로변
<6월의 일기> 제작부들이 도로 양편을 막아섰지만, 무데뽀 총알택시들엔 안 먹힌다. 제지 요청을 무시하고 급커브에 과속까지, 공포택시들은 막무가내로 달린다. “스톱! 조심해야지, 이놈아!” 스턴트팀 주디스의 막내인 최광락씨(23)는 김형준 무술감독의 호통에 움찔한다. 카 스턴트를 하기 위해 차에 올라타려다, 카 스턴트를 방불케 하는 택시들의 돌진에 다칠 뻔한 광락씨, 이제 2년차 스턴트맨이다. “자기 몸뚱이 자기가 챙겨야 한다”고 선배들로부터 질책을 얻어들은 것만 수십번이라는 그는 촬영 시작부터 선배에게 된서리를 먹어선지 얼굴이 잔뜩 굳어 있다. 오늘 스턴트 장면은 식은 죽 먹기라더니, 아니다. “네가 속도를 좀더 내줘야 해!” 테스트 촬영에 들어가자, 중앙선을 넘어서 달려오는 차를 발견하고 급작스럽게 피해야 하는 광락씨에게 주문이 연달아 떨어진다. “네가 (상대를) 맞춰줘야 한다고.” “핸들을 좀더 과감하게 틀어!” 김형준 무술감독은 ‘슛’이 지연되자 “그만두고 싶어?”라며 후배들에게 엄포까지 놓는다.
두두둑. 하늘이 기어코 빗방울을 떨구기 시작한다. 단번에 끝내야 한다는 마음들이 앞서서였을까. 슛, 하자마자 차량이 뒤엉키고, 접촉사고 직전까지 간다. 후진하면서 차량들이 재정비하는 동안 잠자코 있던 임경수 감독도 “사람 심장 떨리게 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낸다. 스탭들이 카메라 동선을 다시 체크하는 동안 잠깐 짬이 나지만 차 안의 광락씨는 마이크를 쥐고 있으면서도 차창 밖으로 얼굴을 빼든다. 아마 머릿속은 캠코더를 통해 확인한 실수를 되씹고 있는 중일 것이다. 서너번의 테이크가 이어지고, 임경수 감독이 “모니터 확인하겠습니다”라고 하자, 그제야 광락씨는 차에서 내려 땅을 밟는다. 긴장이 풀리면서 갑작스럽게 요의(尿意)가 찾아온 것일까. 아니면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짧은 순간에, 선배들 중 누군가가 자신을 찾을까봐 걱정이 돼서일까. 막내 광락씨는 선배에게 간단히 보고하더니 간이 화장실까지 쏜살같이 뛰어간다.
“욕먹는 건 기본이죠. 드라마 <해신> 찍을 때 송일국씨 대신 2∼3m 높이의 바위에서 떨어진 적이 있어요. 리허설 때 감독님이 그림 좋다고 해서 자신만만하게 올라갔는데 실수로 돌에 미끄러진 거예요. 하필 머리가 돌에 부딪혀서 기절했어요. 의식을 찾은 다음에 다시 재촬영에 들어갔는데, 어떻게 OK를 받았는지 기억이 안 나요. 3일 반나절을 잠 한숨 못 자고 스턴트하던 도중에 말 뒷발에 배를 맞은 적도 있는데 그때는 주변에서 내가 다친 것도 모르더라고요. 아파도 아픈 척 못하고 촬영을 계속 해야 하는 게 좀 힘들죠. 그래도 기회가 주어지면 맨 먼저 손들어요.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남들이 꺼리는 액션이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요즘 광락이 운동 안 하네!”
8월19일 PM 3:00 강남구 논현동 단비도체육관
뒤늦게 요기하고 있던 광락씨는 선배 이승현씨의 전화를 받더니 갑자기 ‘무릎앉아’ 자세로 바꾼다. 통화가 끝나고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냐고 했더니 “처음 일을 배울 때부터 워낙 버릇이 돼서…”라고 말을 흐린다. 2003년부터 스턴트 일을 시작한 그는 지금은 프리랜서나 다름없다. 일감을 찾아다니다 보니 그렇게 됐다. 자신에게 스턴트 일을 처음 권했던 감독 아래서 뛰쳐나온 뒤로 지난 1년 동안 그는 날품팔이하듯 촬영현장을 누볐다. 그런 끝에 올해 하반기에 개봉하는 <태풍> <야수> <형사>에 모두 출연할 수 있었다는 그는, 그러나 혹시 선배들이 “다 키워놨더니 나갔다”고 비난할까봐 두렵기도 하다. 카메라 앞에 한번이라도 더 서고 싶어서 행했던 결정이기에,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을 다독이지만 말이다.
식사를 끝내고 단비도체육관을 찾았더니, 몸이 허약한 6∼7명의 중·고생들이 “5초 안에 상대를 넘어뜨리지 못하면 알아서들 하라”는 호랑이 관장님의 지시에 따라 땀을 흘리고 있다. 광락씨는 10여분 정도 몸을 풀고난 뒤 몸을 비틀어 허공에서 떨어지는 하우스 턴을 비롯해서 벨트 킥 등 고난도 연습에 모든 정신을 집중한다. “점프력이 이거밖에 안 돼?” “이번엔 옆으로 한번 더 가보자!” 이규환씨를 비롯해서 도장 선배들이 어슬렁거리며 주변에 모여들더니, 자신의 스타일대로 한마디씩 거든다. 선배들이 주문을 더할 때마다 광락씨의 상의는 이내 땀으로 젖어든다. 급기야 조무래기들 수업을 끝낸 서대현 관장도 “요즘 광락이 운동 안 하네!”라며 채찍을 더한다. 2시간이 다 되고, 선배들의 주문이 사그라들었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광락씨는 연습을 멈추지 않는다. 말없이 몸을 튕기고, 던지기를 반복하고만 있다. 먹이 놓친 맹수처럼, 그의 눈을 보니 새빨갛게 충혈됐다.
“단비도체육관에 가면 평소보다 못 뛰어요. 점프도 안 되고. 그날도 약이 바짝 올라서 죽어라 연습한 거예요. 그러면서 알게 된 건데 눈으로 보면 모르지만 그 체육관이 경사가 져 있거든요. 높은 쪽으로 뛰는 걸 모르고 했으니 안 됐던 거죠. 신기한 건 알고 나니까 그제야 몸이 말을 듣더라고요. 다들 안 된다고 하는데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보란 듯이 뛰었고, 원하는 점프가 나오던데요. 맘껏 다닐 수 있는 체육관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아지트가 있으면 남들하고 다른 우리만의 것을 만들 수 있으니까…. 아직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운동하는 게 힘들진 않지만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