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1년이었다. 첫 전파를 탄 지난해 9월4일부터 지난 8월28일까지. 한국방송 1텔레비전 <불멸의 이순신>은 무려 104회를 이어왔다. 노량해전에서 출발한 ‘대장정’은 노량해전으로 끝났다. 왜군과의 7년 전쟁을 마무리하는 승리와 함께, 이순신 장군의 장렬한 죽음이 겹치는 장면은 비장미가 엿보였다.
마지막회 가구시청률은 31.0%(에이지비닐슨미디어리서치). 가벼운 트렌디 드라마들이 자극적 설정으로 쉽게 끌어올리곤 하는 시청률과는 견줄 수 없는 수치다. 드라마 제작비 350억원에 투여된 연인원만도 2만여명이다. 비용 대비 효과는 단순한 숫자 이상이다. 역사를 놓고 여기저기서 벌인 크고 작은 토론도 뜻 있었다. 한국방송은 3~4일 제작 에피소드를 담은 토크쇼와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드라마와 함께 더듬어 가는 다큐멘터리로 이뤄진 특집 방송까지 마련했다.
자녀와 함께 보는 역사극 새 지평 인물 재해석 소홀은 ‘흠’
한계도 있다. 한국의 역사 드라마가 늘 그래온 것처럼, <불멸의 이순신>도 때때로 역사 왜곡 논란을 불렀다. 또한 제작 관행과 여건 탓이기는 하나, 작품적 완성도 또한 다소 아쉬웠다.
성공=<불멸의 이순신>은 방영 전부터 숱한 말들을 쏟아냈다. 이순신 장군을 다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깃 거리였다. “대통령도 읽었다”는 베스트셀러 소설 <칼의 노래>를 드라마화 한다는 데, 시선이 집중됐다. <칼의 노래>가 그렇듯, ‘인간 이순신’의 인간적 고뇌를 중점적으로 그리겠다는 기획의도였다.
신격화한 이순신의 인간적 면모를 되살리겠다는 목표는 성공적이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성웅’은 부하들의 사소한 부분까지 챙기고 신경쓰지만 잘못에 대해서는 엄격한 ‘실용적 리더’의 모습으로 재구성됐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전통적 드라마 주시청층인 여성 40~50대를 젖히고 30~50대 남성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가장 많이 봤다는 시청률 조사 결과가 나온 것도, <불멸의 이순신>이 새로운 리더십을 희구하는 기성세대 남성들에게 다가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실 정치에 대한 실망도 <불멸의 이순신>에 끌리게 한 요인이었다.
특히 <불멸의 이순신>을 자녀들과 함께 봤다는 이들이 많았다. 주로 교육적 차원에서 효과적이었다는 것이다. 자녀와 함께 드라마를 보며 역사적 지식과 교훈, 감동을 얻었으며, 주말 저녁 시간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어 좋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 등도 <불멸의 이순신>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현실의 불만족을 드라마를 통해 대리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이 주효했다.
한계=일반적 드라마 제작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적잖은 한계를 드러냈다. 충분한 사전 준비 없이 그때그때 급하게 찍고, 임의적으로 늘리고 줄이는 편집 행태 등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임진왜란의 첫 승보를 알렸던 ‘옥포해전’ 방영을 앞둔 시간 끌기였다. 지난 3월13일 55회분 예고편에서 ‘옥포해전’을 내보낼 것이라고 알려놓고, 4월2일에야 비로소 옥포해전을 그려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공 들여 찍느라 시간이 걸렸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었지만, 대본 등 준비 부족으로 인한 촬영 지연이 더 큰 이유였다. 타사 경쟁 드라마를 견제하려고 시간 조절을 했다는 비판적 관측도 있었다.
초반 여성 주요배역을 설정했다가 중도에 탈락시킨 것도 드라마 완성도에 결점으로 남았다. 멜로 라인 없이 드라마의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계산 탓에 여성 배역을 만들었다가, 스토리 전개에 걸림돌이 되자 논란 끝에 제외했다. 캐스팅에도 유난히 잡음이 많았다. 애초 선조 역에 캐스팅된 조민기가 지난해 말 최철호로 바뀌었고, 앞서 초희 겸 미진 역에 김태연이 캐스팅됐다 취소되고 김보경이 캐스팅돼 촬영까지 해놓고 김규리로 교체되는 일도 있었다. 이순신 부인 역도 잡음 끝에 최유정에게 돌아갔었다.
역사드라마의 특성상, 역사왜곡 논란도 빠질 수 없다. 원작 <칼의 노래>가 부족한 서사를, 원균의 재조명을 의도한 또 다른 소설 <불멸>로 채우려다보니 발생한 측면이 크다. 거북선 침몰 장면(54회)과 조일전쟁이라는 용어, 활 쏘는 자세 등도 논란을 불렀다.
의미=긴 시간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도 <불멸의 이순신>은 또 하나의 성공한 역사 드라마로 남았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시청자들은 여전히 ‘이순신 어록’을 쏟아내며 종영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고 있으며, 교육인적자원부는 2007학년도부터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불멸의 이순신> 대본을 싣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극 전개 내내 불었던 ‘이순신 신드롬’은 더욱 확대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화려한 상찬 뒤로 역사 드라마에 대해 생각할 거리도 남겼다.
우선, 역사적 실존 인물에 대한 작가의 재해석은 학계와 사회에서의 상당한 수준의 설득력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불멸의 이순신>에 환호했으나, 많은 역사학자들은 드라마에서 눈을 돌렸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도 그래서다. 완벽한 수준의 재해석이란 불가능하더라도, 드라마 제작 일정에 쫓겨 대단히 중요한 역사 해석에 소홀해선 드라마의 완성도뿐 아니라 사회적 파급력까지도 도외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교훈이다.
또한 김명민의 성공적인 연기가 한국 드라마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 애초 조연급을 캐스팅했다며 쏟아지던 우려를 말끔히 걷어냈다. 스타급 연기자만을 선호하는 여타 드라마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눈부신 활약을 아끼지 않았던 빛나는 조연들의 이바지도 드라마사에 남을 일이다. 이밖에 해전 등에 적극적으로 쓰인 컴퓨터 그래픽도 드라마 제작 기술의 진일보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무엇보다 <불멸의 이순신>의 가장 큰 의미는, 이어질 역사 드라마들이 넘어야할 한 봉우리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