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영화, 마지드 마지디를 만나다
어린이 영화(Children Cinema)는 이란영화를 세계에 알린 사절단이나 마찬가지다. 키아로스타미와 마흐말바프에게는 관심이 없다던 팔레스틴극장 앞 관객조차 이구동성으로 꼽은 최고의 감독은 <천국의 아이들>의 마지드 마지디였다. 현지에서는 마지드 마지디의 인기가 최고라고 한다(이번 파지르영화제에서도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다). 아마도 키아로스타미 등에 비해 그의 영화 속 아이들이 좀더 서사에 바탕한 친절한 형식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를 찾아간 곳은 설립된 지 40년이나 됐다는 영화제작소 필름 사즈였다. 건물 외부나 내부나 오래된 흔적이 역력하고, 장비들 중에는 그 흔한 아비드 한대가 없다. 거기서 마지드 마지디는 파지르영화제에 출품할 <버드나무 사랑>의 마지막 믹싱작업을 위해 초를 다투고 있었다. 그를 만난 건 영화제 상영 직전이었고, 인터뷰를 하면서도 마지드 마지디는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바쁘게 옮겨다니며 마지막 체크를 한다. “어때요. 어제 내가 테이프 하나 줬었는데, 테스트해봤어요?” “아니오…. 아직, 어제 한잠도 못 잤어요.” 마지드 마지디와 편집기사는 정신이 없다. 그런 그를 붙잡고 이번 영화에 대해 묻는다. 기대 밖의 대답이 나온다.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우선 성인이다. 청소년이나 아이들은 아니다. <천국의 색깔>을 만들 때 다음에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런 이야기고, 논픽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나로서는 프로 배우를 처음 썼다”고 한다. 새 영화 <버드나무 사랑>은 어린이 영화가 아닌, “또 다른 장르에 대한 시작”이다.
하지만 잘 알려진 <천국의 아이들> 말고도, <바란> <천국의 색깔>(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이 영화가 마지드 마지디의 대표작이다) 등을 만든 마지드 마지디는 어린이 영화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감독이다. 그는 <천국의 아이들> 제작 당시를 회상한다. “<천국의 아이들>은 어려웠던 내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이다. 제작자를 찾느라 3년을 헤맸다. 애들 운동화 갈아 신는 게 어떻게 영화가 되느냐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개인 제작자들은 모험을 하지 않았고, 공공 재단들은 이것이 15분짜리 다큐멘터리면 충분하다고 했다. 하지만 4만달러 정도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성공했고, 미라맥스에 비싸게 팔렸고, 영화를 제작한 커눈은 많은 수익을 얻었다.” 그는 어린이 영화를 곧 이란영화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이란은 연간 80편이 넘는 영화가 만들어지고, 그중 어린이 영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10개 내지는 15개다. 7천만 인구의 60%가 20살 이하인 우리나라는 아주 젊은 나라다. 이걸 기준으로 하면 어린이 영화가 그다지 많다고 볼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아이들을 중심으로 한 영화들이 외국에서 유명해지다보니 그렇지, 실제작편수는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중이다.
믹싱기사와 영화에 대해 상의하는 <천국의 아이들>의 마지드 마지디
마지드 마지디는 어린이 영화의 핵을 커눈의 역할에서 찾는다. 커눈을 발판 삼은 감독들이 외국영화제에서 상을 타면서 이란영화가 어린이 영화로 대변되었다는 것에 주목한다. 그 자신도 커눈에서 영화를 시작한 사람이다. 외국에서의 반응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이란영화의 오래된 중심 소재였던 셈이다. 또는 검열과 거리가 먼 특별한 소재이기도 했다.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말처럼 “아이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 때는 적어도 정치적인 이슈나 혹은 복장 같은 것에 대해 검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란영화에 아이들이 소재로 자주 등장하고, 특히 그중에 창조적인 형식의 영화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현실에 가장 크게 지배받는 존재이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가장 덜 지배받을 수 있는 자유로움의 공백을 지닌 존재들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틈없어 보이는 현실의 희생자지만, 별안간 상상의 터를 허용하는 영화적 매개자다. 그 현실과 상상의 교차가 바로 이란영화의 주요한 특징인 것이다. 그 자체로 공백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형식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닐까, 마지디의 말을 들으며 그렇게 잠깐 딴 생각을 한다.
테헤란 남부 슈시지역의 한 마을에서 그런 공백의 아이들을 마주친 것은 즐거운 기억이다. 가기 전에 안내인은 약간 험한 동네이니 신경을 쓰라고 단속을 한다. 재래 시장터를 지나, 카펫이 널린 토산품 가게들의 거리를 지나 한 시간 좀 넘게 차를 타고 도착한다. 여기저기 흙더미가 무너진 집들과 벽담에 그려진 낙서들과 좁은 골목길 한쪽에 흐르는 수로와 그 옆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영락없이 영화의 한 배경이다. 테헤란 중심가와는 판이한 하층민들의 동네, 아이들과 노인들과 차도르를 입은 여자들만이 있다.
충동적으로 잠시 일행을 벗어나 더 작은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 한 아이가 허물어진 담벼락 위로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민다. 그러더니 팔을 들어 어깨만큼 올리면서 집게손가락 하나를 펴 보인다. 또 다시 들이닥치는 영화. 아마도 이란영화를 몇편만 본 사람이라면 같은 장면을 수없이 보았을 것이다. 나는 이란영화 속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보내는 이 신호가 무슨 뜻인지 항상 궁금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건 상대방에게 뭔가 허락을 얻고자 할 때 취하는 자세라고 한다. 슈시의 소년도 그랬다. 내게 말을 걸고 싶었던 것 같다. 하여간 그 아이 뒤로 또 한명이 쑥 올라오더니 이번에는 장난삼아 내게 돌멩이를 던진다. 그러자 옆의 아이가 놀라 말리고, 지들끼리 웃고 장난치며 싸우더니, 이내 돌을 던진 아이는 다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 아이 둘에게 사진찍자는 시늉을 했더니 그들은 마냥 즐거워한다. 그 순간 나도 마냥 즐겁다. 아이들을 주인공 삼아 영화를 만드는 이란 감독들의 마음이 이런 표백의 심정일는지.
커눈과 이란 영 시네마 소사이어티 견학
이란영화 우리가 끌고 나간다
<천국의 아이들>의 감독 마지드 마지디는 이란의 ‘어린이 영화’ 성행에 있어 커눈(Kanoon: 어린이와 청소년 지능개발연구소)의 역할이 지배적이라고 말한다. 커눈은 1969년 영화제작부를 신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첫 단편 <빵과 골목길>을 포함하여 이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많은 장·단편영화들을 제작했다. 한편, 다리우스 메흐르쥐, 바흐람 베이자이, 아밀 너데리, 알리 악바르 사데기, 마지드 마지디 등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틀어 이란의 상위급 감독들의 작품들도 다수 제작했다. 그 밖에도 커눈은 어린이와 청소년에 관련된 교육과 책자들을 발간할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페스티벌도 개최하고 있다. 아이들을 소재로 한 이란영화가 외국에 알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숨은 공로자는 바로 이곳 커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란 영 시네마 소사이어티는 올해로 설립 21년째를 맞았다. 영화제작은 1년 과정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학생들은 시험을 치러 입학한 뒤 교육 코스를 밟을 수 있다. 시나리오 작성, 사진, 촬영, 편집 등의 과정을 거치고, 기초 코스를 마치면 전문가 코스도 따로 있다. 이란 영 시네마 소사이어티는 이란 전체에 51개가 설립되어 있으며, 매년 2천명의 졸업생들을 배출하고 있다. 이곳을 졸업한 학생들은 전국에서 연간 1천편의 영화를 만들어내고, 각종 단편영화제에도 진출하여 수상하고 있다. 유명 감독 중에도 여기 출신들이 있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거북이도 난다> 등을 연출한 바흐만 고바디가 대표적이다. 더불어 이란 영 시네마 소사이어티는 이란의 최대 단편영화 배급사의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란 여성, 규율과 욕망의 두 얼굴
영화 속 아이들이 상상의 여지를 주는 공백이라면, 그 영화 속 여성은 여전히 현실의 논쟁적 화두다. 가령, 여성들의 구속복으로 인식되어 있는 히잡은 이란 내에서 어떤 여성 긍지의 복장으로도 인식된다. 200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이란의 여성 민권변호사 시린 에바디는 시상식에서 히잡을 벗고 수상대에 올랐다가, 고국에 돌아와 달걀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그 달걀세례를 퍼부은 상당수는 여성들이었다. 복장에는 예외가 없다. 어느 외국 여성도 이 안에 들어오면 다른 무슬림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히잡을 써야만 한다. 함부로 살을 보여서는 안 된다. 장소에도 예외가 없다. 버스를 타도 남자는 앞칸, 여자는 뒤칸으로 나뉜다. 기도를 하러 갈 때도 남자와 여자의 공간은 뚜렷이 구분된다.
이슬람 혁명 이후 연이어 나온 문화혁명의 시기를 다뤄 사형 직전까지 갔다가 전세계 영화인들의 구명운동으로 목숨을 건진 <숨겨진 반쪽>의 감독 타흐미네 밀라니는 이란 여성 인권에 가장 앞서 있는 운동가다. 건축설계사인 남편의 사무실 한켠에서 만난 그녀는 이미 독일 방송팀과 인터뷰를 막 끝마친 다음이었다. 그녀 말에 따르면 자신은 “이란 중산층 여성의 문제를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그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평등해짐으로써 공생하는 길이다. 그녀가 남긴 가장 인상 깊은 말. “내가 항의하는 것은 우리의 손발을 묶는 전통과 남성들 손에 의해 쓰여진 그들 위주의 법이다. 남성이 여성을 억압한다면 여성은 남성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 그 피해는 남성이 보지 않겠는가? 나와 내 남편처럼 평등한 관계라면 인생은 더욱 즐거워질 것이다.” 그러면서 남편과 아이와 함께 웃으며 사진 포즈를 취한다.
이미 영화로 익숙한 타흐미네 밀라니의 만남보다 더 흥미로웠던 건 생소한 다큐멘터리 감독 멜더드 오스구이의 현장이었다. 그가 여성을 화두로 풀어보고자 하는 건 좀 색다르다. 그는 대중문화적이다. 지금 그가 만들고 있는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이란식 코>, 그 계기와 이유를 듣고 나서야 시내에서 보았던 이상한 장면들의 의문이 풀려 무릎을 친다. 그러니까 테헤란 시내를 돌아다니는 많은 사람들, 특히 많은 여자들이 콧등에 반창고를 붙이고 다니는 것이 이상하기만 했다. 그 사람들이 어젯밤 다 싸움질을 한 건 아닐 테고…. 그 대답을 들려주는 것이 바로 <이란식 코>의 촬영현장이었다.
이란에는 코 성형수술이 유행이라고 한다. 오스구이에 따르면 “이란은 통계적으로 전세계에서 성형수술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라고 한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 것. 이유는 한국과 반대다. 큰 코를 콤플렉스로 생각하는 이란 여성들은 코를 작게 만드는 수술을 받는다. 멜더드 오스구이는 그녀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오늘은 피부과 의사와 미용사로 일하는 두명의 여성이 이미 와 있다. 오스구이는 그녀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듣는다. “직업이 뭔가요? “미용사입니다.” “코 수술을 한 지는 얼마나 됐나요? 어떻게 하게 됐나요?” “10년 전에 70만리얄을 주고 했어요. 지금은 2천만리얄 정도를 줘야 할 수 있어요. 혁명 뒤에 이란 여성들은 히잡, 차도르 등으로 모든 곳을 가렸죠. 유일하게 밖으로 내보이는 부분은 얼굴뿐이에요. 이란 여성들의 눈과 눈썹은 대체로 아름답잖아요. 그러니 문제는 코예요. 그래서 수술하는 거예요.” 카메라 앞에 선 미용사는 당당하게 이유를 설명한다. 이유를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구속의 예와 표출의 욕망이 교차한다. 멜더드 오스구이는 이미 부산영화제에서도 상영을 한 적이 있는 감독이니, 아마도 우리는 이 영화의 여성들을 언젠가 스크린에서 마주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여성문제와 젊은이들의 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오스구이는 다큐멘터리 감독답게 끝끝내 어르고 달랜 나머지 현지 코디네이터로 그곳에 갔던 우리 일행 한국인 여성까지 카메라 앞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