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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영화 기행: 인도 [2] - 영화관과 필름시티
글·사진 오정연 2005-08-30

인도의 영화관을 찾아서

뭄바이에서 며칠을 보내고 나니, 그 시끌벅적하다는 인도의 영화관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토요일 밤. 마침 바로 전날 개봉한 블록버스터 <까알>을 보여준다며, 현지 가이드와 통역을 담당한 신뚜를 대동하고 뭄바이 시내의 극장을 찾았다. 한번 눈을 마주치고 웃어보이면 세상없는 미소를 보여주지만, 외국인이라면 덮어놓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인도인들이 잔뜩 모일 극장을 혼자 찾는 것은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탓이다. 오토릭샤의 옆자리에 앉은 신뚜는,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영화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는다지만, 그 역시 한달에 두세번 정도 극장을 찾는 평범한 인도인이다.

예전 대한극장 정도 되어 보이는 갤럭시 극장 앞은, <까알>이 전회매진을 기록한 탓에 표를 구하지 못한 인파와 “까알, 까알” 외치는 암표상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35루피짜리 극장표를 80루피(2005년 8월 현재 환율 기준 1루피=23.5원)에 샀다. 참고로 인도인들이 평범하게 사먹을 수 있는 식사 한끼가 30루피 정도. 인도인들이 극장에서 즐긴다는 군것질거리, 사모사(감자튀김 안에 만두소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엄청나게 느끼하다)를 사들고, 상영관에 들어섰다. 인도 국가 연주가 끝난 뒤, 영화의 오프닝이 막 시작한 상영관 안은 관객의 환호성으로 떠나갈 것 같다. 스크린에는 발리우드 최고의 섹시 남녀배우인 샤루칸과 말래카 아로라의 아찔한 춤과 노래가 펼쳐진다. 미국 팝가수의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는 오프닝은 화려한 무빙과 유려한 편집, 현란한 군무로 가득하다. 5년 전만 해도 이처럼 흥겨운 군무장면에는 극장에서 디스코텍 조명을 제공하고 관객은 자리에서 일어나 배우들의 춤과 노래를 따라했다는 것이 신뚜의 설명이다.

장면마다 관객 환호하고 따라하고

<딜왈레…>를 10년째 상영하고 있는 마라타 만디르 극장

떠들썩한 오프닝과는 전혀 상관없이, 본격적인 영화가 잔뜩 무게를 잡고 시작된다. 긴박한 움직임으로 정글을 배회하는 카메라는 호랑이의 시점을 흉내낸 듯하다. 매끄럽고 그럴듯하지만, 불과 몇 십초 전의 왁자한 뮤직비디오를 기억하는 이방인에겐 그저 스포츠화 광고 같기만 하다. 이번엔 스포츠화 광고에 등장할 법한 근육질의 사내(그래봬도 발리우드의 떠오르는 우상이다)가 팔뚝 굵기의 뱀과 사투를 벌인다. 영화 본편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샤루칸과 아로라의 뮤직비디오가 관객을 위한 서비스였듯 이후의 영화와 절대 무관한 이 뱀도 일종의 서비스다. 인도에서 뱀은 풍요를 상징하는 성스러운 동물. 얼마나 인기가 많은가 하면,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던 <아나콘다> 시리즈가 보장된 흥행영화일 정도다.

주인공이 나오면 환호성을 보내고, 인물들의 대사를 따라하고, 위험에 처한 인물에게 말을 걸고, 호랑이가 다가오면 자리에서 튀어 일어나고, 누군가가 준비한 레이저포인터로 스크린 속 여주인공의 가슴을 가리키면 모두가 함께 키득거리는 등 다양하고 입체적인 관객의 반응이, 영화보다 흥미진진하다. 힌디어는 하나도 못 알아듣지만 이해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호랑이 전문가와 그의 아내가 젊은 여행객들과 함께 초자연적인 야수와 대결하는 내용의 <까알>은, <나는 네내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를 비롯한 할리우드 공포영화 몇편을 이어붙인 듯 엉성하다. 주섬주섬 일어서는 관객도 웬일인지 시큰둥한 표정이다. 듣자하니 오프닝을 제외하면 춤과 노래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두 시간을 살짝 넘긴 짧은 러닝타임이 주된 불만이었다고.

발리우드 제작현장, 필름시티를 찾아서

광활한 필름시티로 들어가는 입구

전체적인 이야기와 별개로, 화려하고 흥겨운 <까알>의 오프닝은 최고 수준이다. 100년 가까이 춤과 노래를 찍어온 이들에겐 뭔가 비장의 기법이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품고 뭄바이 외곽의 필름시티를 찾았다. 할리우드에서 온 감독, 윌라드 캐럴이 발리우드의 톱스타 살만칸과 함께 <마리골드: 인도에서의 모험>라는 영화를 찍고 있는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50㎢ 규모의 대지에 16개의 스튜디오가 늘어서 있는 그곳은, 우리나라로 치면 종합촬영소와도 같은 곳. 스튜디오를 찾아가는 길목 곳곳에는 2002년작 <데브다스>를 위해 만들어진 저택 등 엄청난 규모의 오픈세트들이 눈에 띈다. 물어물어 도착한 5번 스튜디오 밖은 살만칸을 기다리는 일반인들과 식사를 준비하는 요리사들, 화려하고 서구적인 복장의 관계자들로 제법 복잡하다. 육중한 스튜디오 문을 빼꼼히 열어보니, 메가폰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그 주인공은 <마리골드>의 안무가, 바이브하비 머천트. <라간> <데브다스> 등의 안무를 맡았던 그는, 홍콩과 미국 등 해외에서 활동 중인 발리우드 최고의 안무가 파라칸 다음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모니터 앞에 버티고 앉아 현장을 통제하는 안무가 머천트와 어색하게 그 뒤를 서성이는 캐럴 감독의 모습이 묘하게 대비된다. 안무가가 감독을 능가하는 권력을 쥐게 되는 군무신을 찍는 탓에 그러한 대비는 더욱 극대화됐을 것이다. <마리골드>는 발리우드영화를 찍기 위해 건너온 할리우드 여배우(알리 라타)가 발리우드의 안무가(살만칸)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사랑과 재능을 손에 넣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 이날은 춤에 능하지 않은 여주인공이, 최고의 댄서가 된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판타지 장면을 촬영 중이었다.

화려한 세트, 세분화된 업무 분담

<마리골드: 인도에서의 모험> 촬영현장

한번도 가보지 못한 할리우드 현장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감독의 국적 탓인지 모든 진행이 영어로 이루어지는 현장. 발리우드의 배우와 젊은 스탭들이 미국 스탭들과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여기는 서로 섞이지 않는 두 종류의 스탭이 존재한다. 세련된 옷차림, 영어로 지시를 내리고,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이들은 전문 스탭이다. 겉으로 보기에 인도인인지, 미국인인지도 구분할 수 없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흔히 마주칠 법한 옷차림에, 음료수나 간식거리를 나르고, 자기들끼리는 힌디어를 사용하며, 일이 없으면 촬영장 구석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이들은, 우리나라로 치면 제작부에서 잡무를 담당하는 스탭들. 물을 전담하는 사람이 따로 있을 정도로 발리우드의 현장은 역할이 세세하게 구획돼 있다. 임금의 수준은 묻지 못했지만, 정해진 일만 하루에 8시간씩 하면, 일정한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제작부의 잡무 담당 스탭은, 발리우드의 환상을 좇아 지방에서 상경한 이들에겐 꽤나 괜찮은 직업이라고.

할리우드만큼이나 까다롭고 엄격한 현장. 인도의 영화평론가이자 현지 코디네이터로 취재를 도왔던 미낙시 셰데조차 숨을 죽인다. 사진도 찍을 수 없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스탭에게 말을 걸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은 사실 춤에 영 소질이 없어 보이는 여배우 때문에 벌어진 것. 머천트는 자신이 책임지는 춤장면에 서툰 솜씨의 배우가 쩔쩔 매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선 안 된다며, 여배우가 등장하는 장면에선 일체 사진 및 동영상 취재가 불가함을 알려왔다. 필름시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스튜디오의 문을 여닫는 일을 담당하는 인자한 인상의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고, 촬영을 기다리며 거만한 자세로 스튜디오 밖에 앉아 있는 살만칸을 구경하고 돌아왔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분량을 찍고 있는 살만 칸

이국적인 옷차림의 백댄서들

한 소절씩 끊어가며 촬영을 진행하던 머천트는, 명백히 NG인 테이크를 마치고도 “나이스”를 연발하며 배우를 독려한다. 세팅을 바꾸는 동안 여주인공은 머천트의 조교들에게 보충수업을 받고, 또 다른 조교는 주인공을 대신해서 카메라 앞에 시범을 보인다. 20여명의 백댄서들은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무대에 쪼그려 앉아 있다. 그러나 머천트를 포함한 다른 스탭들은 언뜻, 의외로 즐거워보인다. 카메라 앞에서 배우가 춤추는 동안 동작을 따라하며 집중하는 머천트,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는 사람들…. <슈팅 라이크 베컴> 등 거린다 차다 감독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 엿보이던 유쾌한 제작진의 면모가 떠오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흥겨운 춤과 음악에 한해서는, 관객뿐 아니라 제작진도 즐기지 않고서는 연출이 불가능한 것일 테다.

지난한 여주인공의 분량이 끝나자 살만칸이 무대에 오른다. 백댄서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찍을 분량의 동작을 브리핑받는 모습이 듬직하다. 최근 조직폭력배와의 연계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당시 그는 어리버리한 여배우의 악몽으로부터 모든 제작진을 구원하는 구세주 같았다. 촬영은 박차를 가하고 스탭들은 점점 더 분주해진다. 5분 만에 조명을 정리하라든가, 바닥을 빨리 닦으라는 닦달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음악. 배우들이 조금씩 몸을 움직인다. 머천트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원, 투, 스리, 포!” 살만칸과 백댄서들이 시원스런 점프를 선보이며 절도있는 춤을 시작한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정면에서 풀숏과 롱숏을 잡은 카메라 두대가 그 모습을 담는다. 머천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여주인공에겐 미안하지만 쇼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안무가 바이브하비 머천트 인터뷰

“춤을 추되, 표정연기를 잊어선 안 된다”

-발리우드영화에서 감독은 안무가, 음악감독과 어떻게 작업하나.

=발리우드의 감독은 음악과 춤을 이해해야 한다. 감독은 음악감독이 어떻게 음악의 언어를 삽입하며, 안무가가 어떻게 춤을 만들지 알아야 한다. 내가 작업한 감독 중 산제이 릴라 반살리는 그런 면에서 정말 훌륭했다. 그는 안무가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발리우드의 안무가는 촬영이나 연출, 편집도 잘 알아야 할 텐데.

=그렇다. 안무가는 춤의 동작만 짜는 게 아니라 춤과 관련해서 감독이 되어야 한다. 춤과 관련해 아이디어를 내고, 구체적인 동작을 정하고, 카메라 앞에서 최고로 표현될 수 있도록 촬영까지 책임진다. 카메라 앵글을 알면 내가 만든 춤이 어떻게 보일지를 알 수 있다. 이런 동작엔 어떤 카메라의 움직임과 앵글이 어울리는지, 더 나아가 어떤 의상과 색상과 조명이 춤을 돋보이게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마지막 편집까지 알고 있다면 더욱 좋겠지.

-요즘 발리우드영화 속 춤의 경향은 어떤가.

=테크닉과 안무가 점점 현대적이 되어간다. 고전적인 측면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많은 인도 사람들이 외국영화를 보고, 외국인들 역시 발리우드영화를 즐기면서 생긴 일이다.

-당신이 생각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동작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눈이다. 춤을 추되, 표정연기를 잊어선 안 된다.

-배우들이 춤을 잘 추지 못했을 때 어떻게 하나.

=감독은 배우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움직임을 이해하면 신속한 지도가 가능하다. 10번 이상의 리허설보다 그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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