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2 거실(INT-N)
어둡고 고요한 거실,
문 밖에서 키도어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문이 열리며 복도의 강렬한 한줄기 빛과 함께 들어서는 여자, 수애.
거실등도 켜지 않은 채 구두를 벗고 재킷을 벗어 소파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는 부엌으로 사라지는 수애.
어둠 속에서도 망설임 없는 그녀의 움직임은 그곳이 그녀에겐 익숙한 곳임을 말해준다. 곧이어 냉장고 문을 열 때 특유의 유리병 흔들리는 소리가 나고 액체로 된 무엇인가를 따르는 소리가 나고 잠시 뒤, 잔을 들고 거실로 나오는 수애, 피곤한 듯 소파에 풀썩 주저앉는다.
수애 (독백하듯)… 불을 켜주든가… 왔냐고 묻든가… 둘 중 하나는 해줘.
pause가 걸린 듯 잠깐의 고요.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거실 한쪽에 작은 스탠드가 켜지고 보면, 앤틱한 책상을 등지고 앉아 있는 정구. 홍난파가 썼을 법한 동그란 은테 안경의 그는 왠지 히스테릭해 보인다. 하지만 빼어나게 잘생긴 그!!
정구 (건조)… 왔어?
깊은 한숨을 쉬는 수애,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애써 자신을 다스린다.
정구 불 켰어. 왔냐고도 물었고… 뭐 더 바라는 건 없어?!
슬쩍 비틀어진 미소를 흘리는 정구. 물론 차갑지만 몹시 매혹적인 미소다. 파르르∼ 경련이 일어나는 수애의 뺨.
고개를 돌려 증오의 눈빛으로 정구를 노려보는 수애.
수애 있어! (불안한 음정)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정구 글쎄… 고민해볼게….
‘더이상 못 참아!’ 분위기로 살짝 미친 듯 귀를 틀어막고 괴성을 지르는 수애.
벌떡 일어나 큰 걸음으로 정구에게 다가가는 수애.
수애 (아… 절규)고민하지 말고 그냥 죽어줘! 제발! 죽어! 죽어! 그냥 죽어!
정구 니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수애 그래, 원해! 간절히! 너만 죽으면 난 살 거 같애! 사는 거 같을 거야! 콧노래가 절로 나올 거야! 날 사랑하는 걸까….
정구 (말 자르며)사랑해!
수애 사랑이 식어버린 게 아닐까
정구 (또)식지 않았어.
수애 하지만 결국 식어버리겠지! 그렇게 마음을 쥐어뜯는 상상으로 밤을 샐 일은 없겠지!
정구 내 사랑은 식지 않아! 영원히.
*대사, 느끼하지 않게 해주세요.
수애 (물색없이)정말? 그럼 다행이고….
정구, 손을 올려 수애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준다.
천사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정구의 다정한 미소.
정구 우리 수애… 오빠 믿지?
수줍게 얼굴 붉히며 살짝 외면하는 수애, 금세 열렬히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로선 믿기 힘들 만치 매혹적인 정구의 입술이 수애에게 점점 다가가고 둘, 뜨겁게 키스….
1년 전쯤, 어느 날 저는 요러한 내용의 꿈을 꿨습니다.
물론 그뒤의 내용이 완전 작살나게 멋지지만 18세 미만 불가 등급이고 수애의 소속사에서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 것이 분명하기에… 거기까지만.
어찌됐건 저는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3대 길몽 가운데 하나인 수애꿈을 꾼 것이지요.
나머지 둘은 모두들 알다시피 용꿈과 돼지꿈입니다.
애니웨이, 그 꿈을 꾼 뒤 저는 진지하게 수애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수애가 내 사람 같고 만리장성을 중국에서 런던까지 쌓은 사이라 누가 혹시 내 앞에서 수애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면 몰래 뒤따라가 벽돌로 뒤통수를 찍을 기세였습니다.
증세가 심해진 저는 문득, 그녀가 문자 메시지를 보냈나 싶어 휴대폰을 살피기도….
얼마 뒤, 사진을 찍는 친구의 스튜디오에서 수애를 만났습니다.
저∼ 유명한 영화 <가족>의 티저 포스터 촬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날 사람은 만나야 한다던 어떤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나더군요.
꿈속에서 그녀가 몸서리치게 좋아하던 제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습니다.
거들떠도 안 보더군요.
크게 마음이 상한 저는 한마디 쏘아붙였습니다!
‘안녕하세요∼ 팬입니다!’
수애는 그제야 저의 마음을 알았는지 꿈속에서 그랬던 것과는 약간 다르지만 여전히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미소로 저에게 말했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그래… 보는 눈이 많으니까! 저러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해버리고 말아야지 어쩌겠습니까….
수애…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