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혹은 85년이었을 수도 있다). 초등학교 3학년, 9살의 나는 TV에서 흘러나오는 광고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유니폼을 입은 네명의 유령잡이들, 레이 파커 주니어의 신나는 주제곡, 붉은 드레스를 입은 시고니 위버. 나는 그 영화를 보고야 말리라 결심했다.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고, 버스 노선도 익히고, 자금도 마련했다. 하지만 시내 극장까지의 여행은 보통 큰 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처음으로 혼자 타는 버스라니. 겁이 났지만 극장값 1천원에 왕복 버스비 100원을 주머니에 챙겨넣으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목표는 마산 중앙극장. 버스에 올랐다. 한데 버스 안내양이 보이질 않았다. 기사는 웃으면서 플라스틱 박스를 가리켰다. 아뿔싸. 버스 안내양이 사라지고 버스비를 셀프-서비스로 내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눈을 질끈 감고 100원을 툭 떨어뜨렸다. 큰일이다. 돌아오려면 50원이 필요한데. 이제 영원히 집으로 돌아올 수는 없는 걸까. 오줌이 마렵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냅다 매표소로 뛰었다. 관람료 1300원라는 붉은 글씨가 눈에 박혔다. 미성년자 할인이라는 문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돌아갈까. 하지만 영화가 너무 보고 싶었다. 아니 보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극장 앞에 붙어 있는 포스터와 스틸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영화를 보고 나온 대학생들을 붙잡고 토끼 같은 눈으로 “이 영화 재미있어요?”라고 물어보곤 했다. 매표소 앞에 줄을 서 있다가 내 차례가 오면 옆으로 비껴나기 놀이도 서너번 하고나니 지겨워졌다. 아이의 열망과 300원의 부재가 겹친 정신분열적 사태가 계속된 지 3시간. 배가 고팠고, 엄마가 보고 싶었고, 추웠고, 서러웠다. 무엇보다도 영화가 보고 싶었다. 그때 그녀가 나타났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내 옆에 털썩 앉더니 “뭐하니?”라고 물었다. 돈이 1천원밖에 없어서 영화를 볼 수가 없어요, 라고 했어야 했는데 입에서 튀어나온 건 “영화가 보고 싶어요”였다. 영.화.가.보.고.싶.어.요.라니. 죽고 싶었다. 그녀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두장의 표를 끊은 다음 내 손을 잡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영화는 상영까지 10여분을 남겨놓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니?” 저 천원 있어요, 라고 말했어야 옳았지만 나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본젤라또, 포도맛 본젤라또가 손에 쥐어졌다. 그녀가 물었다. “영화가 그렇게 보고 싶었니?” 나는 그대로 울음을 터뜨렸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혼자 영화를 보러간 날에 대한 시답잖은 추억이다. 그녀의 얼굴과 집으로 돌아간 과정은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기억나는 건 포도향 본젤라또의 맛과 시고니 위버의 붉은 드레스. 그날 이후로 혼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고, 중앙극장 같은 개봉관 말고도 태양극장과 마산극장 같은 변두리 재개봉관이 있다는 사실을 차차 알게 되었다. 게다가 태양극장은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도 언제나 무사통과였다. 나는 5학년에 올라간 기념으로 <13일의 금요일: 블랙 후라이데이>를 혼자서 보러갔고, 중학교에 올라가서야 후라이데이가 프라이데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고스트 버스터즈>를 본 날부터, 친절한 그녀가 나에게 손을 내민 그날부터, 인생이 맑아질 조짐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