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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쌍라이트 형제

북측 방문단의 현충원 참배가 있던 날, 한 사내가 북측 대표단에 물병을 집어던지다가 경찰에 끌려가는 장면을 보았다. 그런가 하면 인공기를 불태우려는 우익 시위대를 경찰은 소화기를 난사해가며 진압했다고 한다. 원천봉쇄와 강경진압은 운동권만 당하는 줄 알았더니, 이제는 대한민국을 전세낸 우익들이 경찰의 감시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게 많던 우익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내 곳곳에서 열린 우익 집회에 모여든 이들은 어떤 곳은 다섯명, 다른 곳은 스무명, 또 다른 곳은 1천명 남짓이었다고 한다. 결사항전을 외치며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것에 비하면, 시위는 상당히 싱겁게 끝난 셈이다. 듣자 하니 그 와중에 자기들끼리 내분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저물어가는 이 ‘올드라이트’ 대신에 등장한 것이 이른바 ‘뉴라이트’. 전매청 담배 이름을 연상케 하는 이들은 한때 조선·중앙·동아일보의 전격적인 지원을 받았으나, 그뒤 시간이 꽤 지났어도 세력을 넓히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어차피 언론에 의해서 부풀려진 풍선은 곧 바람이 새면서 제 크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른바 뉴라이트 운동을 이끄는 이들은 과거에 운동을 했다가 ‘전향’한 분들이라고 한다. 이들의 변신을 보면서 안쓰러운 생각도 든다. ‘좌익이냐, 우익이냐’ 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 문제이다. 문제는 좌익을 하든 우익을 하든 그 짓을 극단적으로 하는 것이다. 정작 반성할 것은 극단성인데, 이들은 그 극단성을 그대로 갖고 좌에서 우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황당한 것은 이들이 ‘올드레프트’와 대결하겠다고 떠들고 다니는 것. 도대체 올드레프트가 뭘까? 과거의 운동권들은 정치권에 들어가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의 기성 정치인이 되고, 그나마 진보적 성향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도 이제는 민주노동당에서 합법적인 정당정치를 하고 있다. 이들이 뒤로 남긴 기다란 그림자와 싸우겠다는 얘기인가?

남북의 화해 무드가 급물살을 타자 올드라이트와 뉴라이트가 다시 뭉쳤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올드라이트는 경찰의 감시망을 뚫고 물병을 투척하고 인공기를 불태운다. 80년대 운동권으로 가투를 좀 해봐서, 그 절박한 심정, 이해가 간다. 이들의 코미디를 뉴라이트가 말로 거든다. 북한 인권을 외면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통일이 되면 민족의 법정에 서게 될 것”이라나?

이분들이 언제부터 ‘인권’에 그렇게 관심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박정희는 북한이 인권천국이라서 7·4 공동성명을 발표했고, 전두환은 북한이 자유국가라서 장세동 보내 김일성 만세 부르게 했고, 김영삼은 북한이 민주국가라서 김일성을 만나려 했던가? 그때는 내내 가만히 있다가 왜 갑자기 김대중 정권 이후로 북한 주민의 인권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인권 좋아하시네”라고 했던 박통의 철학을 추종하는 올드라이트와 뉴라이트. 소리 높여 외치기를 ‘인권은 체제를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란다. 그러면서 국가보안법의 존치를 주장하는 건 또 뭔가? 남한이 처한 특수한 안보 상황을 근거로 국가보안법을 정당화한다면, 북한의 특수한 안보 상황을 들어 또한 북한의 인권탄압 역시 정당화해야 하지 않을까?

한반도 적화의 위기에 쌍라이트 형제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섰다. 보수의 온상 한나라당에서 기뻐할까? 행여 한나라당이 이들과 명확한 선을 긋지 못하고 적당히 거느리고 살아가려 한다면, 그때 한나라당은, “가자, 쌍라이트 형제”, 코미디언 심형래가 연기로 했던 그것을, 인생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솔라솔미레도. 띠리리리리리.

일러스트레이션 김순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