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힘은 위대하다. 최소한 용서할 수 없는 바람둥이를 멋진 주인공으로 만들 정도는 된다.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서 재민은 단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드나드는 스튜디오의 취직을 위해 근영을 유혹하고, 이내 차버린다. 하지만 음악은 그를 구원한다. 그가 아무리 근영을 상처 입혀도, 달콤한 음악만 흐르면 그는 ‘진심’을 드러내고, 이내 근영에게 용서 받는다. <루루공주>의 또 다른 바람둥이 우진도 비슷하다. 우진은 희수를 어쩔 수 없이 포기하며 희수에게 못된 척해서 희수에게 상처를 주지만, 이내 음악이 흐르면 그들은 거짓말처럼 우연히 만나고, 서로의 사랑을 깨닫는다. 즉, 이런 드라마들에서 음악이란 현실과 판타지를 경계짓는다.
바람둥이의 거짓말은 현실이다. 반면 그 남자가 ‘알고 보니 진심’이었음을 보여주는 건 판타지다. 음악이 등장하면 현실은 판타지가 되기 시작하고, 그것은 내용이 아닌 순간의 분위기로 캐릭터를 설명한다. 낭만적인 음악, 뽀얀 화면, 멋진 배경 속에서 잘생긴 남자가 진지한 표정을 짓는데 그게 어찌 진심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모든 갈등의 해결은 남자의 ‘진심’에 있고, 그 진심은 복잡하고 현실적인 고민의 결과가 아니라 음악의 등장과 함께 마치 조건반사처럼 표현된다. 이때마다 드라마는 드라마가 아니라 ‘뮤직비디오’로 변하고, 그것이 반복될수록 캐릭터의 대화는 중단되며,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캐릭터 대신 예쁜 그림을 위한 피사체에 머무른다. 그래서 결국 남녀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보면 착함’과 ‘사랑하는 남자는 무조건 용서함’이라는 단순한 캐릭터에서 머무르고, 트렌디드라마는 10년 전부터 반복된 상투성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대다수의 트렌디드라마의 음악들이 ‘O.S.T’가 아닌 ‘배경음악’(BGM)에 머무르는 것은 음악 자체의 문제보다는 예나 지금이나 캐릭터의 심리 변화를 음악과 영상의 변화로 때우려는 트렌디드라마의 안일함 때문이다. 그것을 벗어나면 드라마 음악은 <변호사들>처럼 등장인물의 팽팽한 설전에 더 큰 긴장감을 부여할 수도 있고, <안녕, 프란체스카>처럼 스토리에 어울리는 기존의 곡들을 끌어쓰면서 영상이 만들어내는 정서를 더욱 강조할 수도 있다. 바람둥이에게도 진심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바람둥이들이 나오는 드라마들은 여전히 그 진심을 보여주지 못한 채 바람둥이의 ‘프로포즈’만을 반복한다.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믿고 싶을 만큼 화려하고 낭만적인, 그러나 지나면 아무런 내용도 없었음을 깨닫게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