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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400만 돌파한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
사진 오계옥이종도 2005-08-31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 뭘까, 그걸 알면 쉽다”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을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일하는 CF회사의 아담한 사무실 구석에는 1995년부터 즐겨 탔다는 스키 보드가 있었다. 야트막한 서가에는 일본 만화책, 로보트 태권V와 <은하철도 999>의 메텔 그리고 <슈퍼맨> 인형이 가족 사진과 함께 놓여 있고, 벽에는 김홍도가 일본에서 그렸을지도 모른다고 추정되는 그림 2점이 걸려 있었다. 칸을 비롯해 해외에서 CF로 수상한 메달과 상패들도 보였다.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쉽고도 심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는 CF 감독 출신에게, 혹시 그만의 독특한 창작의 비밀을 캘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빡빡한 인터뷰 스케줄로 점심도 거른 채였지만, 그는 활달하고 천진난만하게 그리고 막힘없이 질문에 응했다. 첫 단편 <내 나이키>의 배경인 1981년의 나이키 모델은 칼 루이스가 아니라 알베르토 살라자르이며, <웰컴 투 동막골>이 포스트모던적 무역사성에 기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자신은 고증하는 사람이 아니며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고, 그런 사실은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최단시일 내에 4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처음부터 이렇게 성공할 줄 알았나.

=예상할 수 없었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 같은 작품은 재미있게 봤지만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하지는 않았는데, 이렇듯 의외의 결과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충무로에서 봤을 때는 내가 이방인이다. 나는 이 시스템을 잘 모른다. 누군가 몇 백만명이 들려면 초반 좌석점유율이 어때야 되고 둘째 주에는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식의 얘기를 들려준 게 있는데 듣고 보니 무섭더라. 겁도 났고. 내 또래는 좋아할 수 있는 얘기지만 나머지는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봤다. 마케팅 담당자들에게는 이 영화가 판타지영화라는 얘기를 뻥긋하지도 말라고 당부했다. 한국엔 없는 거니까. 이렇게 사람들이 좋아할지 예측 못했다.

-신인으로서 엄청난 제작비를 댄 영화를 끌고 간다는 게 큰 스트레스였을 거다.

=이 얘기는 재미있다고 믿었다. 내가 재미있다고 믿으면, 거기엔 진실이 있을 수 있다. 어느 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가 프레젠테이션할 때는 다들 재미있어 했다. 힘들다고 포기할 수 없었고, 정치적 이유로 누군가 내 영화 제작을 방해한다고 해서 그만둘 수 없었다. 내 의지를 꼭 관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나를 믿고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의무다. 스탭이 뭔가 필요하다고 내게 말하면 장진 감독과 투자자에게라도 얘기를 했다. 다이렉트로 투자자에게 가기도 했다. 제작자인 장진 감독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영화를 끝까지 해보자는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사실 겁이 났다. 거짓말쟁이가 될까봐.

-장진 감독과의 첫 만남에서 자신을 팬이라고 소개했다던데, 어디가 그렇게 좋았나.

=그 남자의 어딜 좋아한 건 아니고. (웃음) 내가 먼저 그런 짓을 잘하는데, 배우 사인도 잘 받는다. 그는 나와 비슷함과 다름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그냥 재미있는 걸 해봐야지’ 하는 건 비슷한 거고, 나와 정반대의 재주를 지녔다는 건 다른 거다. 그게 좋았다. 나는 스토리를 시각화하는 것, 대사 없이도 재미있는 코믹한 상황을 연출하는 걸 잘한다. 장진 감독은 시각을 배제하고서 다이얼로그만으로도 재미있게 만들 줄 안다. 그걸 막연하게 동경했고 재미있다고 느꼈다. 나에게 없는 거니까. 전략인데, 이렇게 팬이라며 다가가면 다들 좋아한다. (웃음) 그렇다고 해서 동기가 불순했다는 건 아니다. 나이는 내가 많았지만 그렇게 다가갈 정도로 그때 나는 열정이 있었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이에게 가서 팬이라고 하고, 그 밑에서 일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니다.

=난 그런 걸 잘 안 따진다. 나이보다는 내가 배울 게 있는가가 중요하다. 나는 많은 스탭의 얘기를 듣는다. 한 사람의 능력이란 건 제한적이다. 나는 생각할 뿐이고 만들고 도와주는 건 스탭들이다. 난 완벽하지 않고 부족하다는 걸 인식한 이후부터 자유로워졌다. 그걸 인정 못하면 불편해지고 자해하게 되는 거다.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거다.

-<묻지마 패밀리>에서 당신이 만든 <내 나이키>를 보면서 놀랐다. 시나리오 쓰는 건 어떻게 독학했나.

=그냥 영화를 많이 봤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가에 꽂힌 시나리오 작법 책들을 보여주며) 내가 유치하다. 서점에 가면 싸게 살 수 있는 책들이다. 너무 간단한. 난 시각적으로, 상황을 영상으로, 대사 없이 만들 수는 있다. 문학 소년이 못 돼서 대사는 잘 못한다. 드라마는 되는데 내 시나리오는 읽기가 불편하더라. 공모전에 내도 떨어진다. 내가 느낀 감정이 사나리오로 잘 안 옮겨져 자책했다. 그렇게 7∼8년이 흐른 거다. 지금 물으니까 생각이 나는데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들에게 영화 이야기를 잘해줬다. 얘기를 잘하려면 영화를 몇번은 봐야 된다. 영화를 완벽하게 재현해서 설명하면서 드라마를 익히게 된 건 아닐까 싶다. 지금도 모르겠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해온 것뿐이다. 내가 쓴 거는 캐스팅도 투자도 잘 안 된다.

-아내가 그러더라. 사람들 눈길이 장진에게 더 간다고. 그게 섭섭하지는 않나.

=인간이기에 섭섭하다. 안 섭섭하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러나 돌려서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스타 감독 겸 제작자에 신인이 붙은 거니까. 그의 역량에 빌붙어가지 않았다면, 좋은 원작이 안 주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운이 좋았다. 애초에 장 감독은 이 영화가 30억원대 예산이면 할 수 있다고 봤다. 사이즈가 얼마나 큰 줄 몰랐던 것이다. 나도 아내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둘째, 셋째 작품을 만들면서 풀리는 문제지. 지금은 운인지 실수인지 나 자신도 모른다. 섭섭함 이전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장진과 함께 묶여서 내 이름이 나오니 어떤 사람들은 장 감독이 한 거냐고, 내가 작품에 관여를 많이 한 모양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장 감독이 많은 영향을 줬고, 이게 겨우 내 첫 작품이니 어쩔 수 없다.

-영화감독으로서, 이야기꾼으로서 재능이 대중적이고 선명하다.

=내가 광고를 해서 그런 것일까. 어렸을 때 소풍을 가면 콩트나 연극, 장기자랑을 하는데 내 부대가 따로 있었다. 10명 넘게 출연을 했고 반장 같은 애들이 끼워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내가 관객일 때, 감독들이 내가 알아듣게 얘기를 해줬으면 하는 갈증이 있었다. 만듦새도 좋으면서 쉬울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충무로에선 논란의 여지를 남겨두어야만 작가 대접을 받는다. 나는 작가가 아니다. 관객이 내 영화를 보며 경쟁사회에서 벗어나 잠시 무장해제를 하길 바랄 뿐이다.

-장진과 또 다음 작품을 한다고 들었다. 당신은 의리의 사나이보다는 댄디보이처럼 생겼는데.

=그게 나의 단점이자 장점이다. 내 얼굴을 사람들이 처음 보면 진실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나랑 많이 일해보면 나와 내 영화가 닮았다고 말한다. 나는 거짓말을 싫어하고, 사소한 걸 위해서 사람을 진실로 대하지 않는 게 싫다. 장 감독은 적어도 내겐 진실하다. 착각일지 모르지만. 장 감독은 이제 날 파악하고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알았다고 말한다. 내가 제작비 사이즈를 늘리고 ‘골질’을 했는데도 화를 내기보다는 ‘왜 나는 신인 때 박 감독처럼 하지 못했을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과도 안 본 상태에서 그런 말을 했으니 얼마나 사람이 선한 거야. 얼마나 나를 죽이고 싶었을까. 미치고 싶을 정도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그냥 하는 거다. 굶는 거 난 잘한다. 아등바등 살고 싶지 않다. 월세 살고 바가지 긁히면서도 잘 살아왔다.

-촬영하면서 머리가 많이 셌다고 들었다.

=그게 내 성격이다. 잠을 못 잔다. 이 작품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안 좋은 성격 때문일 수도 있는데 6개월을 1∼2시간씩만 잔 것 같다. 부쩍 흰머리가 늘고 살은 7∼8kg 빠지고. 내가 누굴 한번이라도 통솔해봤나. 학교에서도 아웃사이더였는데. 저들을 어떻게 달래서 같이 가야 하나 고민했다. 상처도 많이 줬을 거다. 쉬운 게 단 한 가지도 없더라.

-장 감독과는 서로를 어떻게 부르나.

=서로 장 감독, 박 감독 이렇게 부르지. 처음 만났을 때 팬이라고만 말하기엔 생뚱맞잖나. 마침 신하균과 맥도날드 광고(해외에서 여러 상을 탄 ‘버스 안에서’라는 광고로, 500원짜리 프렌치 프라이로 목숨걸지 말라는 내용이다)를 찍은 뒤라서 그 얘기를 했지. 다음주에 전화가 왔는데, 단편을 해보지 않겠냐고 하더라. 그러니 그 사람이 무모한 거다. (웃음) 내가 검증 안 된 사람인데도 잘 시키더라고.

-<웰컴 투 동막골>의 너무 큰 스케일과 포스트모던적 무역사성 때문에 영화화가 어려울 거라고 보았다. 뭘 보고 영화가 될 거라고 확신했나.

=연극 원작을 보고 사람들이 누군가를 달래주고 있는 얘기구나, 하고 봤다. 마을 안으로 군인들이 들어갔는데 그 안에서 재미나게 노니까 휴식이 되는구나,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희생이 너무 좋았다. 사람의 마음이 선해지는 걸 보았다. 연극엔 이렇게 선한 사람들과 놀라운 언어유희가 있었는데, 그걸 그대로 영화화하면 장진의 틀을 벗어날 수 없었다. 영화화하기에 완벽했다면 안 했을 거다. 사람들이 연극을 보고는 제작비도 안 들고 스타도 없는 <집으로…>를 떠올렸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연극을 영화화했을 때 재미있는 요소를 많이 넣을 수 있는 여백을 보았다. 그게 가장 매력적이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그러더라. 방송국에서 광고 만들고 미술감독 하면서 경험을 했더니 장편영화 만드는 건 어렵지 않더라고 말이다. 광고 만들던 경험이 영화 만드는 데 밑천이 됐겠지.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 사람은 한 시대를 풍미한 광고쟁이였고, 나는 CF 감독은 나중에 됐고 그전에는 PD였다. 좋은 화면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을 준 건 있다. 영미쪽은 광고가 인물을 다루지만 우리는 패션과 감각으로 접근한다. 영화와 많이 다르다. 내 화면은 좋은 편이 아니었고 난 스토리에 관심이 많았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그레텔이 길을 잃지 않으려 빵 조각을 뿌리지 않나. 나는 감독이 판타지라는 장르를 빵조각처럼 뿌려놓아 관객이 길을 잃지 않았다고 보았다.

=좋은 요소로 작용을 했다. 사실 판타지 장면은 몇개 안 된다. 설정상 있을 법하지 않은 비현실적 마을인데, 관객에게 굉장히 신비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 가짜의 세계에 감정 이입이 가능할까 많이들 의심했다. 그러나 앞에 10분만 잘 정리해도 그 세계로 들어온다. 누굴 속이려고 한 건 아니고 모두들 기분 좋게, 즐거운 상상력을 가미해서, 편하게 들어올 수 있게 했다.

-판타지라는 장르에 관객이 흔쾌히 동의를 한 이유는 여일 때문이라고 보았다. 여일이 강혜정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는 여일을 가장 예쁜, 어디로부터도 자유로운 순수의 상징으로 만들고 싶었다. 여일의 사투리를 지도해준 심원철씨 역할도 있고, 강혜정이 감각적으로 잘해낸 것도 있을 거고 여러 요인이 잘 맞아떨어졌다. 캐스팅을 심사숙고했다. 사실 강혜정은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얼마나 독하고 강했나. 썩 탐탁지는 않았다. 광고회사 옆 사무실에서 과자 광고를 만드는 데 응원차 따라나섰다가 보았다. 쉬는 시간에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 아이 같이 노는 걸 보고서 호기심이 생겼다.

-<내 나이키>의 마지막 장면도 그렇고 <웰컴 투 동막골>의 멧돼지 잡는 장면도 그렇고 한국 대중과 접촉하는 지점, 섭씨 몇도에 그들이 행복해하는지를 잘 아는 것 같다.

=그들이 신나해하는 것은 내가 신나해하는 것이다. 그걸 알았다. 관객이 극장에 와서 간절히 바라는 건 뭘까. 그걸 알면 쉽다. 군인들이 가까워지는 걸 바란다는 걸 알면 극적으로 그렇게 하면 된다. <내 나이키>에선 소박한 사람들의 꿈이 이뤄지기를 관객이 바란다. 결국 관객이 ‘참 다행이다, 꿈을 이뤄서, 사이가 좋아져서’ 이렇게 느끼게 하면 된다.

-그러나 <웰컴 투 동막골>의 화해는 거짓 화해라고 얼마든지 비판받을 수 있다. 미군의 출현과 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보기에 불편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고 잣대가 다르다. 나 같은 사람은 금방 화해한다. 폭력을 쓸 만한 힘이 없기 때문이다. 이성적, 논리적인 접근만 하면 힘들다. 팝콘이 터질 때 꽃을 피웠는데, 관객에게 최면을 걸어주고 싶었다. 위급한 상황에 오히려 행복을 꽃피우고 싶었던 거다. 이성적으로 집요하게 만들 수야 있겠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먼저 만든 사람의 진의를 파악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멧돼지 잡는 장면 같은 대목은 감독의 고집과 유쾌함을 동시에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원작에선 있을 수 없는 거다. 원작에선 첫날 모두들 화해하고 바로 밭에 나간다. 연극은 판타지가 있을 수 없고 유머로 버무린다. 나는 서로 다른 군인들이 한날 한시에 마을로 들어오는 건 확률 제로라고 봤다. 장 감독은 내 의견에 반대했지만 내가 싸워서 이겼다. 총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과 군인들이 충돌해야 에너지가 생기고 재미가 생긴다고 보았다.

-그런데 멧돼지 고기를 동네 사람들에게 돌리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마을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라 일부러 생각해주지 않은 것인가 했다.

=내 초고엔 부락민이 채식주의자다. 육식하는 사람은 공격적이다. 나도 체질이 그렇고 흐름상 강냉이와 감자만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멧돼지를 먹을 것 같지는 않다. 그 신은 철저하게 군인을 위한 신이었다.

-마지막 비행기 공습 장면은 지나치게 길고 그 이전까지 감정을 끌어올리던 연출과 달리 힘이 좀 달린다.

=제작비 20억원이었다면 그렇게 정리 안 했다. 순수제작비만 50억원을 넘게 썼다. 이 엔딩장면은 마지막에 만들어서 투자자도 안 보여줬는데 투자자의 평가는 되게 재미있는데 돈은 다 어디다 썼느냐 하는 것이었다. 사실 엔딩 전투 장면에서 많이 안 썼다. 모두 CG고 돈은 이미 전반부에 다 썼다. 후반 CG는 목숨 걸고 만들었는데 우리의 높은 퀄리티도 보여주고 싶었고 투자자에게 돈을 썼다는 걸 확인시켜주고도 싶었고, 내가 안심하려고 한 것도 있고, 작가와 상업영화 연출가 사이에서 줄타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는데 짚어주니까, 확 아프네. (웃음)

-여일의 퇴장은 좀더 극적이고 전압이 높을 줄 알았다.

=여일은 희생양이다. 말대로 여일 퇴장 장면이 힘이 세지면 뒤로 가서 더 편하다. 관객이 감정을 여일에게 이입하면 군인들이 마을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더 강화되고 정서적인 여파도 더 크다. 그런데 사고란 소리 소문 없이, ‘뭐야, 죽은 거야?’ 그런 게 더 진짜 같다고.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소년병의 심리로 가는 걸로 대신하고 싶었다. 그런 얘기들 하시는데 관객을 울리려고 한 영화가 아니다. 관객이 너무 감정이 풍부한 거지. 행복한 영화, 전쟁으로부터 군인들이 자유로워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거다.

-장진 사단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데 장진 감독 작품들과 구분이 가지 않을 수 있다.

=<내 나이키>를 할 때 수다 배우들도 무명에 가까웠다. 이번엔 부락민을 모두 내 뜻대로 캐스팅했다. <웰컴 투 동막골>의 시나리오를 보면 주인공들이 주인공 같지 않다. 대배우들은 안 하겠다고 하더라. ‘이 영화가 되겠냐?’ 하신 분도 있었다. 함께한 배우들은 이 영화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믿음 있는 사람과 할 때 훨씬 시너지 효과가 난다. 스타들이 나오는 영화는 내 성향은 아닌 것 같다. 부락민을 맡은 배우들은 영화 속 부락민과 똑같았다. 너무 맑았고, 할말이 있어도 다 넘기고, 우리 대접이 소홀할 수도 있는데 영화에 다 맞춰줬다.

-인민군에 대한 온정적인 시선이 일각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데.

=여기 나온 군인들은 사실 전쟁과 다 무관한 이들이고 끌려온 것이다. 누구의 편이 될 의도가 없었던 이들이다. 전쟁을 일으킨 건 이들이 아니라 거대 권력 아닌가. 이 영화를 색안경을 끼고 보면 불편하다. 인간 본성만 보면 자연스럽다. 그러니 교육이 무섭다. 공격을 받은 적이 없는데도 적으로 생각하니. 어른들이 봤을 때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일 수도 있지만 모두 다 희생자고 안쓰러운 인간일 뿐이다. 동네 어른들도 좋아하는 거 보면 어른들도 내 진의를 파악하신 것 같다.

-어릴 때 즐겨 읽던 책이나 만화, 좋아하던 영화는 뭐였나.

=나의 최고의 작품은 <미래 소년 코난>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 것 같다. 운동회만 나가면 응원가로 많이 불렀다. 영향을 많이 받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것인 줄, 그의 TV 데뷔작인 줄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지만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기 걸작들도 대단하지만 <미래 소년 코난>을 이길 수 있는 건 없다. 너무 기막히게 재미있었고, 어른이 되어서 예쁜 오렌지빛 DVD 세트를 사서 보았는데 여전히 재미있을 뿐더러 깜짝 놀란 게 철학적 성찰이 있다는 거였다. 문명의 이기가 주는 해악을 말하고, 지구를 구하는 건 자연이라는 너무 쉬운 얘기지만, 그러나 위대한 이야기가 거기에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서도, 큰 깨달음을 준다. 다음 영화는 이처럼 소중한 것을 신나고 재미있게 다뤄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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