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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의 프런티어
2001-07-25

심산의 충무로작가열전 27 이구영(1901∼73)

이구영은 나운규 및 윤봉춘과 더불어 한국영화 초창기를 화려하게 장식한 르네상스 영화인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흔히 해방 이후 첫 영화로 손꼽히는 <안중근사기>의 감독으로 기억되지만 연출뿐만 아니라 편집에도 손을 댄 적이 있고 무엇보다도 시나리오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부었던 인물이다. 나운규 역시 시나리오와 연출 그리고 주연까지 겸했지만 그가 쓴 시나리오는 대부분 본인이 직접 연출한 데 반해, 이구영은 평생 남긴 12편의 시나리오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작품을 다른 이가 연출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시나리오 작가의 비조라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충무로의 프런티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활동시기가 워낙 앞서다보니 그가 남긴 작품들에는 유난히 ‘한국 최초의’라는 수식어들이 자주 따라 붙는다.

서울 토박이인 이구영은 배재학당을 졸업하자마자 일찌감치 충무로에 뛰어든 골수 영화인이다. 시나리오 데뷔작은 김영환의 연출로 완성된 무성영화 <장화홍련전>. 당시 단성사 주인이었으며 한국 최초의 프로듀서로 손꼽히는 박승필이 제작한 작품인데, 배우와 스탭 모두 한국인만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극영화로 꼽힌다. 한국영화 기술스탭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필우가 촬영, 편집, 녹음, 현상을 도맡아서 한 작품이다. 이듬해 이구영은 <쌍옥루> 전후편으로 감독 데뷔식을 치름과 동시에 한국 최초의 연기전문학교인 조선배우학교를 설립한다. <낙화유수>에서 주연으로 기용된 복혜숙, 이원용, 정암 등이 모두 이 학교 출신 배우들이다. 진주를 무대로 기생과 화가의 애달픈 사랑을 그린 <낙화유수>는 한국 최초의 영화주제가 <강남달>로도 유명한데, 1929년 컬럼비아레코드에서 출시된 <낙화유수>를 부른 가수는 바로 이구영의 동생 이정숙이었다.

나운규가 남긴 민족영화의 대명사 <아리랑>의 속편에 해당하는 <아리랑 그후 이야기>에 대해서는 서로 상치되는 기록들이 분분하다. 전편에서 감옥으로 끌려갔던 영진이 출옥 뒤 다시 살인을 저지르고 끌려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는 기록도 있고, 출옥한 영진이 결국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길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는 증언도 있다. 심지어 <자료로 본 한국영화사>의 저자인 정종화는 이 영화의 감독을 나운규로 추정하기도 한다. 어찌됐건 흥행은 전편에 비해 크게 저조했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인연을 맺은 윤봉춘은 훗날 그의 가장 든든한 영화적 동지가 된다. <승방비곡>은 최독견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이복남매였음을 깨닫고 괴로워한다는 내용의 신파극. 이 영화에서 조연을 맡았던 윤봉춘은 1958년 리메이크작에서 감독을 맡는데, 이때 기용한 배우는 이룡과 엄앵란이었다.

훗날 월북하여 북한의 인민공훈배우로 칭송받게 된 문예봉 주연의 <춘향전>은 한국 최초의 발성영화로 기록된다. 감독을 맡은 이명우는 <아리랑 그후 이야기> 이후 줄곧 카메라를 잡아온 촬영감독 출신인데, 위에서 언급한 이필우의 동생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당시 평균 제작비의 3배가 넘는 거금 1만원을 들여서 찍은 대신 평균 입장료의 2배인 1원을 받고 개봉했는데 결과는 엄청난 대박이었다. 이구영이 그려간 승승장구의 필모그래피는 그러나 일제 말기로 접어들자 그 맥이 끊긴다. 상당수 영화인들이 어용친일영화의 제작 일선으로 끌려갔던 것을 떠올려보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해방 이후 이구영은 오직 ‘지사감독’으로 불리던 윤봉춘만을 위하여 시나리오를 쓴다. 이른바 ‘광복영화’ 혹은 ‘계몽영화’로 불리던 <삼일혁명기> <유관순> 등은 비록 16mm로 제작되었지만 대중으로부터 격정적인 갈채를 받았다. 한국전쟁 동안 만들어진 <성불사>는 일종의 참전독려영화로서 당시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표창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충무로 작가의 비조 이구영의 존재가 한국영화사의 축복이라면, 그의 작품들을 소문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영화사의 저주다.

심산/ 시나리오 작가 besmart@netsgo.com

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24년 김영환의 <장화홍련전>

1925년 이구영의 <쌍옥루>(전후편)

1927년 이구영의 <낙화유수> ★

1930년 이구영의 <아리랑 그후 이야기>, 이구영의 <승방비곡> ★

1931년 김상진의 <방아타령>

1935년 이명우의 <춘향전>

1947년 윤봉춘의 <삼일혁명기>

1948년 윤봉춘의 <유관순>

1949년 윤봉춘의 <애국자의 아들>

1952년 윤봉춘의 <성불사> ★

1954년 윤봉춘의 <고향의 노래>

★는 자(타)선 대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