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출판하고 400년이 지났다. 엄청난 에피소드와 액자소설을 포함하고 있는 <돈키호테>는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랄하고 재치있으며 생기를 간직한 소설이다. 그런 소설을 각색한다는 건 모험이지만, 뮤지컬 <돈키호테>는 원작을 뒤바꾸는 동시에 경의를 바치는 힘든 경지에 도달했다.
스페인의 지하 감옥, 신성모독죄로 투옥당한 세르반테스는 적대적인 죄수들로부터 구제불능 이상주의자라는 선고를 받는다. 변론의 기회를 달라고 말하는 세르반테스. 그는 연극으로 자신을 변호하겠다면서 의상을 챙겨입고 기사도 문학에 빠져살다가 미쳐버린 시골 귀족 알론조가 된다. 돈키호테를 이름으로 정한 알론조는 정의를 수호하겠다는 신념에 불타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소설 <돈키호테>는 감옥 안의 소품과 죄수를 동원한 극중 연극 <돈키호테>로 변해간다.
작가 데일 와서맨은 불쌍하게 살았지만 타락한 현실을 지치지도 않고 공격했던 작가 세르반테스를 돈키호테와 같은 인물이라고 보았다. 아마도 맞을 것이다. 돈키호테는 대접을 받으면 답례를 해야 하고,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검을 들어야 하고, 불의를 지나쳐선 안 된다고 믿는다. 모두 맞는 말이지만 현실 속에서 그 원칙은 코미디에 불과하다. 돈키호테가 말하듯 “현실은 진실의 적”이다. 여관주인에게 기사서임식을 받거나 풍차를 공격하는 코미디 사이사이 슬픔이 배어나오는 건 그 때문이다. 알론조가 돈키호테의 갑옷을 차려입는 순간, 그에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 돈키호테는 환상이고 세르반테스는 불행하게 살았다는 사실을.
뮤지컬 <돈키호테>는 이런 현명한 각색을 독특한 구성에도 적용했다. <돈키호테>는 감옥 안에서 벌어지는 즉흥극이다. 그러므로 암전을 틈타 무대를 바꾸는 대신, 죄수들이 분주하게 무대를 만들고 분장을 한다. 그 와중에 모두가 죄수와 극중 인물 1인2역을 해야 하는데도 극은 산만하지 않고 역동적으로 흘러간다. <돈키호테>인 줄은 몰랐지만 우리 귀에 익은 노래들도 듣기에 좋다. 앨리 맥빌이 부르곤 했던 <둘시네아>와 돈키호테가 이상을 좇을 수밖에 없는 심정을 노래한 <임파서블 드림> 등이 대표적인 뮤지컬 넘버. 중견배우 김성기와 <지킬 앤 하이드>의 류정한이 돈키호테를 연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