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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거장 스탠리 큐브릭을 추모하며
ibuti 2005-08-26

<시계태엽 오렌지> <아이즈 와이드 셧>

개인선과 쾌락을 따를 때는 겉으로 내세울 구실을 찾게 마련이다. 앤서니 버지스가 쓴 <시계태엽 오렌지>의 1·2·3부는 ‘이제 어떻게 될까?’란 물음으로 시작한다. 동의나 호기심을 구하는 듯한 이 말은, 그러나 핑계다. 비록 폭력과 광기로 물든 것이라 할지라도 자유의지로 충만한 소년 알렉스는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작품 <꿈 이야기>의 프리돌린(영화에서는 빌)도 질투에 사로잡힌 것처럼 행동하고 있으나 이 또한 변명이다. 그는 가면 아래에 숨겨진 자신의 모습을 좇아 욕망의 오디세이를 써나간다. 그리고 두 사람의 행위가 한 여자의 죽음이란 결과를 각각 초래하면서, 국가권력은 소년의 의지를 통제하고, 남자는 알 수 없는 권력에 의해 욕망의 세계로의 진입을 저지당한다. 개인선, 쾌락, 자유의지는 누가 허용하는 것이며 어디까지 제한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전후에 태어난 1960년대의 비트족 혹은 미래의 악동을 상징하는 알렉스 패거리가 덜 이성적이어서 그들의 자유는 억제되어야 하고,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혹은 현대 뉴욕의 상류층 남자는 상대적으로 지적인 인물이어서 그의 신념과 욕구는 보장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두 영화는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곡예를 펼친다.

먼저 <시계태엽 오렌지>는 자유의지에 대한 제도의 억압을 비판하면서도 일정 부분 현실적인 삶을 받아들이는 알렉스를 통해 도덕적 책임을 부정하지 않지만, 알렉스는 끝까지 ‘내가 가는 곳은 나 혼자만의 길이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이즈 와이드 셧>도 에로스의 세계에서 집으로 돌아온 빌이 가정의 윤리를 다시 수용하면서 끝을 맺고 있으나, 빌 부부는 둘 사이에 ‘영원’이란 말을 쓰기를 주저한다. 공리주의자였는지 이상주의자였는지 모르겠지만 스탠리 큐브릭은 영국인 냄새를 풍기는 미국인이다. <시계태엽 오렌지>와 <아이즈 와이드 셧> DVD의 출시는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될 만하다. <휴머니티> <팻 걸> 같은 영화의 DVD가 선보인 지금, 그 의미를 단순히 신체적 노출이 과다한 영화의 출시로 국한할 수만은 없다. 특히 <시계태엽 오렌지>의 경우 한 나라의 심의 기준과 윤리적 허용치의 잣대가 되는 작품인 만큼 30여년 만의 공식 상륙이 주는 감회가 크다. 영화의 명성에 비해 두 DVD의 부록이 부족하다 해도 <시계태엽 오렌지> DVD의 예고편과 <아이즈 와이드 셧> DVD의 인터뷰는 A급이다. 큐브릭이 직접 만든 예고편은 신선함이 영화에 못지않으며, 거장의 죽음에 눈시울을 적시는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을 보면서 그를 다시 그리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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