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보면 욕을 먹게 마련이다. <게임> 역시 그러고 있는 중이다. 늘 그렇듯이 ‘성’에 대한 충돌이다. 나는 기윤실에서 ‘성적 문란’ 운운하며 시비를 거는 것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게 세상을 망친다고 생각하면, ‘그게 나쁘다’라고 외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어떤 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게임>을 둘러싼 공방 속에서 언론이 흔히 취하는 태도다. 기윤실도 문제가 있지만, <게임>도 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어느 한편을 들기 꺼림칙하다는 입장이다. 객관적인 시선은 필요하다. 하지만 상업적 이용이 나쁘다고 말하는 건, 동어반복이 아닐까.
<게임>은 성을 주된 주제로 쓴 음반이고, 상업적으로 팔기 위한 음반이다. 박진영은 당당하게 말한다. 한국사회에서 성은 더욱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더욱 즐거워져야 한다고. 음습한 곳에서 은밀하게 거래되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그런 생각을 담아서 음반을 파는 거다. 기윤실도 나름대로 당당하기는 하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좀 유치하다. ‘성폭행 범죄율 1위 같은 성범죄의 만연이 <게임> 등 음란한 문화상품 탓’. 이건 사실이라고 보기 힘들다. 더 노골적이고 음란한 포르노가 허용되는 미국이나 유럽은 한국보다 성범죄율이 낮다. 박진영의 <게임>이 지나치게 노골적이라고 생각해서 비난하는 입장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이런 주장은 전제가 잘못됐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게임>이 상업적인 음반이기 때문에 편들기 힘들다고 말하는 대신, <게임>의 성표현이나 성에 대한 입장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따져야 하는 게 아닐까? 나쁜지 좋은지를 나름의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만약에 상업적이지 않고, 순수하게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음반이라면 그게 더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건 마치 ‘의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좋은 의도였다면 필요한 것이고, 나쁜 의도였다면 문제가 있다는 것.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게 풀리지 않는다. 데즈카 오사무 원작의 애니메이션 <블랙 잭>에서는 선의로 한 소녀를 죽음에 몰아넣은 여자가 나온다. 엔도르핀을 증가시켜 체력과 창조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신약을 개발한 그녀는, 한 소녀에게 반한다. 그 소녀야말로 신인류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신약을 투여한다. 그러나 신약은 부작용이 있었고, 소녀는 죽어버린다. 그건 그녀의 허튼 욕망일 뿐이다, 자신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는.
자신만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고,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죄악이다. 그들은 그게 선의라고 믿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의도가 좋으면 모두 용서된다는 건 아이들에게나 가능한 말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세무조사에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는 건 물론 거짓말일 거다. 하지만 악의가 있었다고 해서, 신문사들의 탈세혐의가 사라지거나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게임>이 상업적 의도가 있건 아니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게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왜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걸까.lotu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