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에드워드 양을 만나다 [2]
글·사진 이성욱(<팝툰> 편집장) 2005-08-24

어쨌든 영화의 주제는 뚜렷해야 한다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

<하나 그리고 둘>

-초기작들에 비해 <고령가…>부터 <하나 그리고 둘>에 이르기까지 뒤로 갈수록 캐릭터나 내러티브가 훨씬 친절하고 선명해진다.

=결국 또다시 주제와의 연관이다. 어떤 작품을 구상할 때 소재와 여건의 타이밍이 중요한데 이런 것이 내가 찍고자 하는 것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그때그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직구를 잘 던지는 투수가 늘 직구만 던질 수는 없지 않은가. 변화구도 던져야지. 초기작들이 모던한 스타일이라고 해서 계속 그렇게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면 현대영화는 이야기 중심의 서사와 더욱 친해져야 한다고 보는가 아니면 크고 작은 불가해한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현실처럼 영화도 추상화에 좀더 힘을 기울여야 하나.

=추상적인 방식을 쓴다고 해도 모든 걸 추상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프랑스에서 몬드리안 전시회를 간 적이 있는데 출구에 이런 말이 있었다. ‘추상의 의미는 모든 사물들을 사실적으로 더욱 뚜렷하게 표현하기 위함이다.’ 추상으로 표현해서 사람들이 더 혼란스럽게 받아들이면 그건 실패작이다. 어쨌든 영화의 주제는 뚜렷해야 한다.

-많은 질문을 주제와 연결짓는데 그 주제는 인생을 뜻하는가.

=비단 인생에 국한하는 게 아니고 생활이기도 하다. 신문을 펼치면 모든 게 주제가 될 수 있는 생활의 반영이다. 작품별로 보자. <청매죽마>는 타이베이의 개성, <고령가…>는 당시의 역사, <독립시대>는 유교 문화와 습관이 젊은 세대에 가져다준 불편함, <해탄적일천>은 대만인들의 삶과 애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생활의 반영이다. 그렇다면 그 영화의 구성, 매듭은 굉장히 복합적이어서 이런 식으로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영화 속의 객관적인 장면들이 주제를 압도하지 않고 주제와 잘 어울려 내 의도를 관객에게 전하려는 것이 나의 주요 목적이자 철학이다.

-영화로 삶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고 했는데 다른 감독의 작품에서 그런 경험을 했거나 <하나 그리고 둘>에 나오는 대사처럼 ‘영화가 인생을 서너배 더 살게 해준다’고 느낀 순간의 영화는.

=내 삶의 이야기를 영화로 옮기는 건 아니고, 오히려 이런 경험들을 허구로 창출해내 관객에게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영화에 이런 과학적 기법들이 존재한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귀레…>는 내가 마치 남미에 가본 것 같은 경험을 주었고,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을 독일에서 만나본 적이 없으나 마치 독일에 친구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 나쁜 영화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최근 영화들 중에선.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보면서 내가 마치 그 현실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을 했다. 내가 복서가 돼 당시의 상황을 체험하는 듯한 느낌. 만약 이 영화에서 공감대를 받지 않았다면 나는 잠재의식에서부터 이 영화를 거부했을 것이고 스토리 자체를 잊어버렸을 것이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현대인들에게 격려를 주려는 바람에서 찍은 작품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어떻게 구상하게 됐는가? 대만 현대사, 성장영화, 누아르, 로맨스 등이 고루 섞인 대작이어서 제작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당시에 영화사를 갖고 있었는데 마침 여건이 맞았다. 무엇보다 주인공에 딱 어울리는 소년, 소녀를 찾은 상황이었고, 시대배경을 상징해주는 오래된 가옥들을 찾아 촬영이 가능했다. 영화를 찍다보면 누군들 문제에 부딪히지 않겠는가. 그걸 헤쳐나가는 기쁨과 의미를 동시에 누리며 만들었다. 그때 찍지 않았다면 지금 완전히 자취를 감춘 낡은 가옥들을 어디서 찾아낼 수 있었을까 싶다. <하나 그리고 둘>도 기획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나서 조건이 갖춰져 찍은 영화다. <고령가….>는 현대인들에게 격려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찍은 작품이다.

-<고령가…>에서 소년의 놀이터이자 소녀와의 데이트 장소로 활용되는 영화 스튜디오에서 감독과 배우가 빚어내는 풍경은 꽤 우스꽝스럽다. 혹시 당시 대만 영화산업의 여건을 풍자하는 것인가.

=비하를 목적으로 특별히 설계해서 만든 장면은 아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 옆에 정말 스튜디오가 있었고, 일부러 수업을 빼먹고 촬영현장을 보러가기도 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도 그 옆에 다른 영화 스튜디오가 있었다. 스튜디오는 나에게는 너무 친숙한 것이다. 영화의 소재는 굉장히 광범위하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경제, 정치, 범죄, 애정 등 모든 게 민감한 주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특정한 주제를 일부러 부각해 관객에게 전하려는 의도는 없다. 내 주제에 맞는 현실적인 현장, 소품을 사실에 근거해 찍었을 뿐이다. 그래서 외부에서 평가하는 나와 사실적인 나는 많이 다른 것 같다.

<광음적고사>

<청매죽마>

-한국 관객에게 가장 낯설게 다가갈 영화가 <공포분자>일 것 같은데 약간의 해설을 부탁한다. 특히 사진에 집착하는 남자와 그가 사진으로 애정을 표하는 여자의 정체에 대해.

=생활에서 우연한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우연들이 불행을 만들어낼 수 있다. 아주 우연한 일인데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일이 될 수도 있다. 그걸 다루려고 했다. 6명의 인물이 나오는데 각기 다 개인적으로 벌이는 일이 우연히 얽히고 설켜 불행으로 간다. 또 실험극장 같은 형식을 취하려고 했고, 사실적인 결론을 내려고 했다. 마무리에서 한 남자의 최후를 두 가지 설정으로 끝냈다. 사람들이 어느 결론이 맞냐고 묻는데 그건 관객의 상상에 맡겨야 할 것 같다. 더 중요한 건 그 남자가 어떻게 죽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든 인생 최대의 비참한 종말이라는 점이다. 내가 타인에게 좀더 관심을 보일 수도 있었는데 무관심으로 인해 그 사람이 불행을 맞이한다는 점이다.

-조너선 로젠봄이란 평론가가 <공포분자>를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과 <일식>에 빗대며 유사성을 찾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식>을 보진 못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작품과 안토니오니의 작품을 비교하면서 자기의 어떤 생각을 표현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농구를 하면서 유난히 골을 잘 넣는 사람처럼.

-지난해 부산영화제 때 <씨네21>과 인터뷰하면서 “서구 비평가들은 학교 가서 더 배워야 한다”는 말이 너무 재밌었다. 예컨대, 비평가들이 허우샤오시엔을 오즈 야스지로에, 당신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에 비유하는 것 같은 것 말인가.

=무슨 맥락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서구 비평가들 중 훌륭한 이들이 꽤 많은데….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내가 가르친 학생들 중에 진짜 흑인을 본 이가 없다. 그런데 그가 친구 중에 피부가 검은 아이를 보고 마이클 조던이라고 부른다. 이런 식이 아니겠는가. 나를 안토니오니와 비교하는 건 겉표면만 보고 말하는 어설픈 비유다. 그 학생이 진짜 마이클 조던을 봤다면 자기 친구를 다시는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다른 장르와 상호교류를 통해 새로워진다

-대만 뉴웨이브와 다른 예술장르와 상관관계는 없나. 문학의 경우 허우샤오시엔이 3편 중 한편을 연출한 <샌드위치 맨>은 소설가 황춘밍의 세 단편을 각색한 작품이고, 또 당시 모더니스트로 부를 만한 소설가들이 뒤에 시나리오 작가로 활약했다고 들었는데.

=당연히 상관관계가 있다. 상업이든 공업이든 서비스업이든 모든 게 어울려 발전할 때였고, 문학 역시 이런 세대 풍경을 반영했으며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청매죽마>에 배우로 출연했던 내 친구 우옌젠은 소설가였지만 이런 상관관계로 시나리오 작가로 일했고 감독도 했다. 음악하던 친구들도 마찬가지고. 80년대의 대만 뉴웨이브는 다른 장르와 교류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아주 중요한 맥락이다. 지금 한국이 이런 상황 아닌가. 서로 활발히 교류하는 한국의 친구들에게서 80년대 당시 내 세대의 느낌을 받았다.

-당신의 사춘기를 지배한 건 장제스가 아니라 일본 만화와 미국 로큰롤이었고, 그것이 당신에게 상상의 공간을 마련해주었다고 한 적이 있다. 지금 일본과 미국 문화의 영향이 대만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끼치는 영향은 여전히 대단하다. 그런데 대만의 젊은이들은 당신과 당신 친구들과 달리 새로운 문화생산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세대는 대단한 행운을 누렸던 것 같다. 그때는 주로 해적판으로 봤고 돈을 따지기 이전에 미국의 음악이나 일본의 만화는 높은 품질에다 선의의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현재는 그 나라의 영화나 음악은 침략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상업적이다. 모두 돈, 돈만 따진다. 그런 면에서 요즘 젊은 세대는 불행하다. 한국은 이 방면에서 아주 잘하고 있다. 특히 영화 정책이 그렇다.

-당신의 영화를 인정하지 않는 대표적 공간은 대만이다. 당신은 그 원인을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에 두고 있는데 둘 사이는 여전히 개선 불가능인가.

=그들이 나와 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들의 문제다. 내가 왈부왈가할 일이 아니다.

관련영화

관련인물

통역 류종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