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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머리보다는 심장으로
유재현(소설가)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2005-08-19

스무살에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마흔살이 되어서도 사회주의자라면 머리가 없는 것이다. 20년 전에는 참 널리도 퍼져 즐겨 사용되곤 했던 이 격언은 지금 고어(古語)이거나 사어가 되어버렸다. 이 표현이 몹시도 생소할 젊은이들을 위해 간단한 해설이라도 붙여야 하겠다.

대개 마흔 줄에 들어선 사람들에 의해 20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사용되었다. 위압이 앞서는 분위기보다는 회유가 앞설 때 흔히 사용된다. 남영동 대공분실이나 안기부 지하실, 각경찰서의 대공과 취조실 뭐, 이런 곳들에서 대공혐의자들을 수사 및 지도할 때 간혹 양념처럼 사용했다. 검찰수사관 입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대학에서는 보직 교수들이 이 말을 사랑하기도 했다. 사회지도층, 수사층, 정보층 외의 일반인들 중에서도 자신을 반공보수로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원래의 의미와는 달리 ‘후일 마흔이 되어 골이 없어진다면 스물의 심장이란 얼마나 허망한 것일까’라는 투의 페이소스를 깔 수 있도록 구사해야 한다.

20년이 지난 뒤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가끔씩 이 말을 곱씹어보곤 했다. 스무살에 분명히 내 가슴에는 심장이 뛰고 있었다. 서른이 되자 심장의 박동이 슬며시 약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흔이 되었을 때 나는 내 심장의 박동이 마침내 정지하리라 생각했고 몹시도 두렵고 비루하고 절망스러웠다. 스물에 내가 그토록 조롱하고 경멸했던 이 유치한 격언이 실상은 비수보다 날카로운 저주였던 것이다. 그 한편에서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격언이 이념에 앞서 삶에 대한 끔찍한 은유였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지만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내가 스물에 가졌던 것은 심장이 아니라 조악한 머리였으며, 마흔이 되어 내가 머리를 가진다면 내 삶은 단 한번도 진정한 심장을 가져보지 못하게 될 것임을. 진정으로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머리가 아니라 심장에서 나온다는 것을.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한 지 1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현실사회주의의 심장이 박동을 멈추었던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이었다. 쿠바혁명 직후인 1960년 11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체 게바라는 공산당 간부에게 초대받은 만찬의 식탁이 프랑스에서 수입한 은제식기들로 가득한 것을 보았다. 체 게바라는 미간을 찌푸리고 옆의 동료에게 물었다. “대체 소련의 프롤레타리아는 모두 수입한 은제식기를 쓰고 있단 말이오?”

심장이 뛰기를 멈춘 혁명은 타락하고 부패한 올리가치(Oligarch)(올리가키 아닌가요? 발음 확인!)들이 그 머리를 지배하게 만들었다. 이론이 혁명을 종장에 이르게 한 것은 아니었다. ‘이론 없이 혁명이 없다’는 말은 부분의 진실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의 심장이 뛰지 않고 신선한 피가 머리에 공급되지 않음으로써 이론은 자신을 실현하고 또 오류를 극복하며 발전하는 대신 파탄의 종장을 맞아야 했다.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사회주의적 대의와 이상 그리고 꿈, 희망, 믿음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들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사회주의가 이념의 종말을 내세우며 세계를 파탄시키고 있는 부정직하고 비인간적인 또 하나의 강고한 이념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인류의 자산이라면, 우린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희망과 그 꿈은 시대착오적인 과거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미래를 향한 것이다. 그 꿈은 폐허의 잔해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폐허 위에 세워야 할 새로운 계획들과 함께 숨쉬어야 한다.

우린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시대를 겪고 있으며 필연적으로 다가올 또 다른 새로운 시대를 향해 걷고 있다. 가장 어두운 밤은 새벽을 앞두고야 비로소 세상을 덮는다. 나는 내가 걷고 있는 지금 이 시대가 어느 때보다도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다는 것에 대해 더할 수 없이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유부단한 내 심장은 결코 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나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또한 단 한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우린 멀지 않은 날에 도달한 새로운 꿈을 향해, 빛을 향해 걷고 있다.

지난 일년 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준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뤼미에르 이후 어떤 시대에도 영화가 늘 한편으로 인류의 꿈과 빛을 담아오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면서 그동안 이 지면에 글을 써왔던 것을 더없이 기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