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사건 때문에 시끄럽다. 아무리 시끄러워봤자, 도청 테이프에 담긴 내용이 무엇인지는 결코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재벌기업과 언론사가 거론되었지만 그것도 유야무야 넘어갈 것이다. 어차피 그 ‘도청’이란 것도 지배집단 내에서의 암투일 뿐이고, 사실 일반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FBI의 후버 국장은 백악관에도 도청장치를 설치했고, NSA는 세계의 모든 통신을 검열하는 것으로, 비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다. 전화나 e-메일에서 폭탄 같은 금기단어가 쓰이는 것을 모두 검색하고, 이론적으로는 모든 도청이 가능하다고 한다. 원하기만 한다면. 이미 <에너미 오브 스테이츠> 등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정의가 승리하는 할리우드 영화와는 달리 현실에서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이 어떻게 정리가 되던, 정보기관의 도청이나 개인 정보 수집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정보조직의 필수적인 임무이자, 생존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정보조직을 만드는 것은 자신, 이를테면 정권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것이다. 그건 필연적으로 불법일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스파이란 자국의 영웅이고, 적국의 악한이다. 게다가 정보조직은 대내업무가 아닌 해외업무를 중심으로 해야 하는 게 원칙이지만, 정보조직을 휘하에 둔 권력자의 처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안정적인 정권을 위해 정보조직을 활용하고, 정보조직은 권력자의 입장을 헤아리는 동시에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대내업무에 열중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도 변하게 마련이고, 설사 국가가 바뀐다 해도 정보조직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보조직은 철저하게 자기의 내적 원리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동서냉전이 극한에 달했을 때에도, 미국의 CIA와 소련의 KGB는 당연히 핫라인이 있었고, 수시로 정보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모든 정보를 수집한다. 결국은 국가나 민족 같은 허구적인 가치가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해 움직이는 것뿐이다.
딱히 정보조직만이 아니다. 모든 조직은 자기 생존만을 위해 움직인다. 심지어 구성원 개개인을 위하는 것도 아니다. ‘난 썩어버린 조직이란 게 아주 싫어요. 인간이란 조직 없이는 살 수 없죠.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단지 조직이 너무 커지면 커질수록 상대적으로 개인은 작아지고, 조직이 개인을 배척할 위험성이 높아지는 거죠. 그건 마치 조직이 하나의 인격을 갖고 자신을 존속시키는 일에 기를 쓰는 상태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조직이 일단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 개인이란 건 조직이란 전차에 너무도 쉽게 깔려버리게 되죠. 마치 벌레처럼.’(<검은 사기> 중에서)
그런데 우습게도, 조직에 속한 인간은 흔히 조직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개인이 아니라, 조직의 규율과 질서가 중심적인 가치로 굴절되어버린다. 조직과 사회를 만든 이유는 개인이 행복해지기 위한 것인데, 국가와 사회의 가치만을 절대적으로 수호한다. 그래야만 잘 먹고 잘 사는 지배집단은 당연히 그러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조차 그런 허상에 사로잡히는 이유가 뭘까.
지금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오히려 개인주의가 아닐까? 인터넷이 개인주의를 조장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인터넷에 떠도는 말을 보면 허구적인 집단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경우가 허다하다. 좌파건 우파건 저마다 조국과 민족을 외치는 세상은 숨이 막힌다. 그런 거대한 개념이 아니면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지 못하는 것일까? 저마다 자유로운 개인의 가치야말로 더욱 소중한 것이 아닐까? 이 사회에서 결코 가능한 일은 아닐 터이니, 자유롭게 살려면 어디 산이라도 들어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