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의 것을 철저히 연구하여 재창조된 스파이더 맨의 포즈.
90년대 초반, 마블 코믹스를 영화화한 <캡틴 아메리카>를 본 적이 있다. 만화 원작 영화의 대표적인 실패사례라고 할 수 있는 <캡틴…>은 싸구려임이 확연한 조잡한 영상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도 드라마와 연기가 너무나 서툴렀다. 10여년이 지나 본, 같은 마블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영화 <스파이더 맨2>는 모든 면에서 <캡틴 아메리카>와 대조적이다. 이 영화는 참신하면서도 박력이 넘치는 영상뿐만 아니라, 탄탄한 드라마와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관객에게 감동을 주었다. DVD에 실린 두개의 음성해설 가운데 배우와 감독, 프로듀서 등이 참여한 것을 선택해보라. 그들이 장면 하나하나에 대해 얼마나 연구했고 얼마나 정확하게 장면의 의미를 파악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특히 1편과 달라진 상황에 처한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도입부의 해설과 클라이맥스에서 스파이더 맨이 가면을 벗어야 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은 웬만한 영화분석 이상으로 훌륭하다. 이를테면 스파이더 맨이 피자 배달에 늦은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disturbance’라는 단어가 고심 끝에 나온 함축적인 표현이었다는 등의 예시를 통해 감상자는 배우와 제작진 사이에 작품에 대한 충실한 이해가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시각효과를 위해 만화책에 묘사된 스파이더 맨의 모든 포즈와 무기, 기술 등을 정리하여 연구한 과정, 철저하게 스토리보드에 맞춘 감독의 연출 스타일, 전편에서 간과된 ‘현기증’을 액션장면에 활용한 아이디어 등은 ‘겉과 알맹이를 함께 채우는 것’만이 만화 실사화의 정도임을 보여준다.
토비 맥과이어가 실제로 맞았던 장면. 가해자(?)는 샘 레이미 감독이었다.
옥타비우스 박사 부부는 피터가 꿈꾸던 이상적인 미래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