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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시퀀스 베스트10 [2] - <올드보이> <2009 로스트 메모리즈>
김수경 2005-08-18

추적과 복수의 시간을 예고하는 시곗바늘

용이 감독이 타이틀 시퀀스를 따로 연출한 <올드보이>(2003)

공중전화 박스에서 술에 취한 채 전화를 거는 오대수(최민식). 화면 하단으로 오프닝 크레딧이 흘러간다. 디지털 시계의 숫자와 아날로그 시계의 바늘이 퍼즐처럼 맞물리며 각각의 크레딧을 형성한다. 크레딧의 문자 하나하나가 제각기 시곗바늘처럼 움직이다가 연기처럼 사라진다. 경찰서에서 오대수를 데리고 온 친구 주환(지대한)이 통화하는 동안 오대수도 자취를 감춘다. 쏟아지는 빗속에 그가 딸에게 선물하려 했던 하얀 날개만 덩그러니 버려져 있다. 화면이 바뀌고 나타나는 일렁거리는 시계의 이미지는 15년간의 감금이 빚어낸 시간의 공백과 그로 인한 삶의 변화를 암시한다. 구름처럼 떠다니다가 겹쳐지고 흩어지는 시계들의 움직임은 앞으로 벌어질 오대수의 추적과 복수의 시간을 예고한다. 시계의 모양이 알파벳 Y로 변하고, 다른 문자들이 시곗바늘처럼 돌아가며 제목 <올드보이>를 만들어낸다. <올드보이>는 국내 최초로 타이틀 시퀀스를 위해 개별적인 연출자를 섭외했다. 극중에서는 오대수를 7.5층으로 안내하는 철가방으로 특별출연했고,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를 만든 용이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인상적인 타이포그래피는 CF로 유명한 백종렬 감독의 솜씨였다.

“시각적으로 탁월하다!”

장준환/ 영화감독·<지구를 지켜라!>

<올드보이>의 타이틀 시퀀스는 무엇보다 시각적으로 탁월하다. 기본적으로 타이틀 시퀀스는 앞으로 전개될 전반적인 영화의 내용을 예고하는 일종의 플래시 포워드 역할을 한다. 따라서 그 작품이 가진 다양한 내적 요소를 이미지와 음악을 통해 짧은 시간에 집약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올드보이>에서는 작품에서 주된 동력으로 작용하는 ‘시간’을 되돌리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이를 의도적으로 혼란스럽게 배치하여 본편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오프닝을 선보였다.

<올드보이>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이동국 유니폼 일장기 삽입 사건

일제 지배하의 가상 역사를 실감나게 보여준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1)

안중근의 주검 위에 타이프 음과 함께 자막이 새겨진다.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 암살미수사건, 저격수 안중근 현장에서 사살.’ 그리고 푸른 빛으로 바뀐 배경 위로 장중한 합창단의 노래와 타악기 소리가 울려퍼진다. ‘1910년 조선합병, 이토 히로부미 초대총독 위임’을 필두로 2002년에 이르기까지 대체 역사의 연표가 연대별로 제시된다. 미국과 일본의 연합군 2차대전 참정, 베를린 원폭투하 같은 역사적 가설이 자료사진과 함께 화면에 등장한다. 사마란치의 올림픽 개최지 발표 음성을 편집하여 ‘1988년 나고야올림픽 개최’로 표현한 것이나 ‘2002년 일본월드컵’에 이동국을 등장시켜 유니폼에 일장기를 그려넣는 설정은 관객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이 타이틀 시퀀스의 또 다른 미덕은 행진곡풍의 음악을 비롯한 사운드가 이미지와 절묘하게 결합되는 점이다. 이를테면 연표가 처음 등장할 때 칼로 베는 듯한 이미지와 사운드, 제목인 <2009 로스트 메모리즈>도 빛과 구름의 움직임이 간결한 효과음과 함께 박력있게 표현된다.

“100년의 시간을 한큐에”

한동성/ CG·모펙스튜디오 실장

좋은 타이틀 시퀀스의 목표는 한정된 시간에 그 영화의 특징을 한눈에 제시하여 관객을 몰입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2009 로스트 메모리즈>처럼 연표로 설명하는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다. 그것을 대사나 내레이션으로 대신한다면 지루하기 십상이고 관객도 흥미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 보통 타이틀 시퀀스를 이야기할 때 비주얼에 한해서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운드도 동일하게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타이포그래피의 적극적인 활용뿐만 아니라 비장한 음악과 효과적인 사운드를 통해 속도감 있게 영화의 특징을 잘 추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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