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탤런트 최진실이 문화방송과의 출연계약 위반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한국방송 드라마 <장밋빛 인생>에 출연하기로 한 직후 이 사실이 알려졌지만, 최진실은 예정대로 촬영을 진행 중이다. 외주제작사인 팬엔터테인먼트는 계약 위반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캐스팅 변경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최진실 급’의 다른 연기자를 찾기 어려워서다.
연기력 갖춘 스타급 몇 안돼 신인 쓰자니 시청률 안나와 멜로 벗어나 장르 다양화로 탄탄한 중견 배우들 활약케
#2. 탤런트 오지호는 애초 에스비에스 <서동요>에 출연하기로 외주제작사 김종학프로덕션과 계약을 맺었는데, 얼마 뒤 문화방송 <가을 소나기>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사극 연기의 부담감으로 고민하다가, 멜로 연기에 도전할 결심을 했다는 설명이 있었다. 문화방송 쪽은 캐스팅을 아직 확정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김종학프로덕션 쪽은 법정에까지 이 문제를 가져가겠다는 입장이다.
#3. 올해 말 방송될 드라마를 준비하는 한 피디는 캐스팅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대본이나 촬영장소 등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출연자를 결정하지 못해 밤잠을 설친다는 것이다. “쓰고 싶은 스타급 배우들은 다들 영화·드라마를 찍고 있거나, 다른 작품 출연 뒤 쉬고 있다. 그나마 쓸 수 있는 배우들은 드라마 캐릭터가 맞지 않아 출연이 어렵다고 하거나 출연료를 너무 비싸게 부른다.” “신인을 쓰자니, 연기 되는 배우들은 드물고, 연기가 되도 시청률 안 나올 게 뻔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한숨을 쉰다. 다른 드라마 피디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드라마 출연을 둘러싼 방송사·외주제작사·연기자(연예기획사) 사이의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연출자들은 출연자 섭외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스타급과 비스타급으로 탤런트들이 양극화 되고, 연기자들의 인력풀이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른바 ‘스타 권력화’ 문제와 무관하지 않으며, 연기자 지명도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드라마 제작시스템도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연기자 층의 변동과는 달리, 멜로물 중심의 드라마 캐릭터는 변화가 없어 연기자의 선택 여지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캐스팅이 시청률을 좌우한다는 생각이 많은 피디들에게 팽배해있는 게 근본 원인이다. 그리고 이는 실제 시청률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기도 하다. 그러나 연기력을 갖춘 주연급 연기자들은 제한돼 있다. 게다가 영화와 드라마가 무수히 만들어지고 예전에 견줘 준비기간 또한 길어지면서 특정 작품에 캐스팅 돼 있지 않은 연기자들을 찾기 어렵다. 잘 나가던 남자 배우 상당수가 군 복무 중이고, 외모만으로 스타가 되던 여성 연기자들의 경우 과거에 견줘 진입장벽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가운데 김정은·정준호가 출연하는 <루루공주>를 빼면, 이른바 스타급 연기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는 거의 없다. <부활>의 엄태웅, <그녀가 돌아왔다>의 김효진, <불멸의 이순신>의 김명민, <어여쁜 당신>의 이보영, <굳세어라 금순아>의 한혜진,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의 최강희, <변호사들>의 정혜영, <그 여름의 태풍>의 정다빈, 이재황, <슬픔이여 안녕>의 박선영, 김동완, <해변으로 가요>의 이완, 전진, 이청아 등은 조연급으로 주연에 발탁됐다. 이달 말 시작하는 문화방송 <비밀남녀>의 주인공도 한지혜와 김석훈 등 조연급이고, <가을 소나기>도 정려원, 오지호, 김소연이 주인공이다.
막대한 출연료를 감내하며 스타급 연기자를 캐스팅한 드라마도 드물게나마 있다. 김종학프로덕션이 준비 중인 <태왕사신기>에는 배용준이 캐스팅됐고, 에스비에스 <프라하의 연인>과 한국방송 <이 죽일 놈의 사랑>(가제)에는 각각 전도연과 비가 출연한다.
결국 연기자 부족 현상은 조연급들의 주연 기용과 스타 연기자들의 연기 활동 재개나 활동 기간 연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연급 연기자 폭의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일면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트렌디 위주의 드라마 제작 경향이 바뀌지 않아 조연급의 주연 기용은 땜질 처방일 뿐이라는 지적이 설득력 있다.
부작용도 작지 않다. 연기력이 담보되지 않은 출연자들로 인한 드라마 질 저하가 그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가수 출신 연기자들의 줄이은 실패를 들 수 있다. <러브홀릭>의 강타, <세잎 클로버>의 이효리, <황태자의 첫 사랑>의 성유리, <남자가 사랑할 때>의 박정아 등이 그렇다. 이밖에도 충분히 익지 않은 연기로 드라마를 실패로 이끈 예는 허다하다.
유효한 대안은 드라마 장르의 다양화라는 의견이 많다. 한 드라마 피디는 “캐스팅이 어려워진 것이 하루이틀 일은 아니지만, 드라마를 다양화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면, 연기력 뛰어난 중견 배우들의 본격적인 활약도 가능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층이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멜로 중심의 트렌디 드라마에서 벗어나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담은 드라마가 만들어져야 주연급 연기자 층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얘기다. 드라마 다양화는 캐릭터의 확대로 이어져 연기력을 갖춘 더 많은 연기자들의 진출을 쉽게 할 수 있다. 지난달 말 한국방송이 <드라마시티> ‘다함께 차차차’에 뮤지컬 배우 김법래 등을 출연시켜 ‘뮤지컬 드라마’를 만든 것이 좋은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