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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한 걸음 세상 밖으로, <일요일 일요일밤에> ‘진호야 사랑해’

정신지체장애인 일상 그린 MBC <진호야 사랑해>… 따뜻한 호응

1. 진호의 일기

발차기 시합. 2005년 6월10일 금요일 오늘은 동엽이 형한테 수영을 가르쳐주는 날이다. 내가 형보다 수영을 잘하기 때문에 동엽이 형한테 가르쳐주기로 했다.… 처음에 준비체조를 하고 발차기를 하고 시합을 해서 내가 동엽이 형한테 이겼다. 발차기 시합을 해서 형이 졌기 때문에 토끼뜀을 100번 했다. 형이 힘들어해서 불쌍했다. … 수영을 가르쳐주는 동안 재미있었다.

자폐증으로 정신지체 2급 장애 판정을 받은 19살 소년 김진호군이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새 코너 ‘진호야 사랑해’에 출연하면서 쓴 일기다. 진호는 장애인 수영 세계 랭킹 3위, 아시아 1위 기록 보유자로 오는 9월 있을 체코장애인세계선수권대회에 유일한 한국 대표로 출전하기로 한 재원이다. ‘진호야 사랑해’는 9월 대회를 위해 노력하는 진호의 모습을 그린다. 또 세상과 한 걸음 가까워지기 위한 진호의 노력도 보여준다. 고된 수영 연습을 마친 진호는 태어나 엄마와 아빠 없이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심부름 다녀오기, 목욕탕 가기, 어두운 산길 오르기 등에 도전하게 된다.

전 코너 ‘신동엽의 D-Day’가 매회 다른 장애인 출연자의 도전 모습을 담았다면, ‘진호야 사랑해’는 진호 한명에 초점을 맞춘다. 진호가 가진 장애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도 없다. 그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한명의 인간이 있을 뿐이다. 일요일 프라임 시간대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이 코너에 시청자들은 폭발적이진 않지만 호의적인 반응을 보내고 있다.

이는 ‘신동엽의 D-Day’ 실패를 통해(사실 이 코너는 저조한 시청률의 <일요일…>에서도 최하의 성적을 받았다) 얻게 된 임정아 PD의 깨달음에 따른 것이었다. “장애인이 등장하지만 오락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액티브하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눈물없이 볼 수 없는 드라마’가 일요일 프라임 시간대 시청자들에게는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그래서 최대한 자연스럽고 잔잔하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전보다 반응이 좋아서 뿌듯하지만, 오락 PD에게 ‘최대한 잔잔하게’는 정말 힘든 일이다.”

2. 정아의 일기

사실적으로! 2005년 7월8일 금요일 오늘도 진호 어머니는 ‘사실대로’를 주문했다. 휴. 슬로를 넣고, 음악만 좀더 넣었다면 시청자들을 펑펑 울렸을지도 모를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락프로그램으로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깝지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진호를 보면 위안이 된다.

임 PD의 말대로 ‘진호야 사랑해’에는 클라이맥스가 없다. 그러니 오락프로그램의 재미도, 휴먼다큐멘터리의 가슴 찡한 울림도 찾아보기 힘들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진호가 짜여진 대본에 맞춰 행동할 수 없으니 달리 해결책도 없다. 임 PD는 이를 진호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정면 돌파법으로 풀었다. 평범함 속에 감춰진 작은 웃음 조각을 찾아내기 위해 제작진은 카메라가 꺼진 순간에도 진호와 함께 호흡했다. 진호의 또 다른 일상이 된 카메라의 따사로움은 낯선 사람들을 두려워했던 진호의 얼어붙은 마음을 조금씩 녹였다. 진실은 힘이 센 법. 따뜻한 카메라에 실린 이 작은 변화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웃기고 울렸다.

“진호가 재미있어하는 것을 통해 웃음과 눈물을 만들어야 하니까 시간이 많이 걸린다. 실제 녹화는 3시간 정도지만, 준비기간이 꽤 길다. 진행자 신동엽씨도 1박2일을 쏟아붓는다. ‘진호야 사랑해’가 감동적인 것은 이런 진정성 때문이다.” 조기 종영을 걱정하던 임 PD의 목소리에 어느새 힘이 실렸다.

3. 동엽의 일기

진호야 사랑해 2005년 8월5일 금요일 진호는 내게 수영을 가르친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4kg을 감량하기도 했지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힘이 빠지는 순간 진호는 인간에게 불가능은 없음을 알려준다. 그의 형으로 또 친구로 그를 응원할 생각이다. 진호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만족이다.

‘진호야 사랑해’는 진행자 신동엽에게도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신동엽은 3시간이라는 짧은 녹화가 끝나고 남은 시간 모두를 진호와 함께 보내는 데 사용한다. “신동엽이 진호를 너무 귀여워한다”는 제작진의 증언이 없더라도, 진호에 대한 그의 사랑은 프로그램 곳곳에서 보인다. 이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것은 언제나 진호다. 자신과 뽀뽀하는 장난기어린 눈 깊은 곳에 배어나는 사랑을 가장 먼저 눈치챈 이도 당연히 진호다. 그래서 진호는 신동엽이 오는 금요일 오후 2시만 되면 베란다에 나간다. 행여 그가 조금이라도 늦는 날에는 참지 못하고 밖을 서성인다.

감정교류를 할 줄 몰라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소년은 ‘진호야 사랑해’를 통해 한뼘 성장했다. 홀로 TV 앞에 있던 엄마에게 손을 잡아줄 줄도 알게 됐고, 고된 산행에 지친 동엽을 이끌고 함께 올라가는 마음도 얻었다. ‘진호야 사랑해’가 의미있는 이유는 이런 ‘그만의 극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아서다. 남을 위해 손을 뻗을 수 있게 된 그의 변화를 따뜻하게 칭찬해줄 수 있어서이며, 장애인 진호가 아닌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 자신과의 싸움에 당당히 맞서는 진호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진호는 지난번 실패한 혼자 목욕하기와 아르바이트라는 과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진호야 사랑해’ 카메라는 성패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세상에 한발 내딛는 작은 용기가 진호에게 더 큰 기적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